1,700여년 전 백제인들이 사용한 최고(最古)의 목간(木簡)이 발견됐다. 선문대 고고연구소가 인천 계양구 소재 한성백제(BC 18~AD 475) 시대 상곽인 계양산성 동문지 집수정(集水井.저수시설) 발굴조사 과정에서 찾아내 27일 공개한 이 목간은 한반도 문자생활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기 3~4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목간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출토된 340여 점의 목간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신라 목간은 6~8세기 것이고, 부여에서 집중 출토된 백제 목간들도 6~7세기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번에 출토된 목간은 종전에 비해 시기적으로 2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 목간은 계양산성 내 집수정(集水井ㆍ식수를 모아두는 저수시설) 바닥면에서 토기인 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를 비롯한 전형적인 한성시대 백제 유물들과 함께 출토됐다.
이 목간은 특히 “한성백제의 수도인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유교 대표경전인 ‘논어’를 학습한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서기 300년 당시에 한자사용과 유교 경전 학습이 보편화했음을 나타내는 자료”라고 발굴조사를 주도한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밝혔다.
목간은 길이 13.8cm가량이나 상하가 부러진 모습이어서 원래 길이는 20~25cm로 추정됐다. 재질은 소나무로 보이며, 5각으로 깎아 묵으로 글씨를 섰다. 오각(五角)목간도 국내에선 처음이다.
글 내용은 공자와 제자들간의 언행을 기록한‘논어’제5편 공야장(公冶長)의 교훈적인 명문장들이다. 5각 모든 면에는 묵글씨가 확인되고 있으나 4면은 글자 일부만이 극히 희미한 흔적을 보이고 있다.
2면의 경우 ‘오사지미능신 자’(吾斯之未能信 子)라는 구절이 판독됐는데 이는 공자가 제자인 칠조개에게 벼슬을 주려 하자 칠조개가 “저는 아직 벼슬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하니 공자가 크게 기뻐했다는 공야장 제6장의 한 부분이다. 서체는 중국 위진시대에 유행했던 해서체다. 이 교수는 목간의 용도를 “논어 구절 암송용이거나 인생의 좌표를 쓴 것”으로 추정했다.
또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主夫吐’(주부토)라는 글을 새긴 기와가 출토됨으로써 이 일대를 주부토군(主夫吐郡)이라고 불렀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기와류, 목재류, 패각류와 길이 24㎝나 되는 대형 거북등도 출토됐다. 계양산성은 이미 한성백제 시대에 축조됐다는 사실도 이번 발굴조사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한성 백제로 진입하는 한강 어귀의 계양산성은 중국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백제 근초고왕 때였던 369년 칠지도를 만들어 일본에 하사했고 이보다 앞서 왕인 박사가 일본에 논어를 전했다는 기록에 미뤄 이번 목간 출토는 한반도에서 일찍부터 한자가 사용됐고, 중국과의 문물 교류가 왕성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말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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