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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14) 코린트식 양식을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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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14) 코린트식 양식을 좋아하는 이유

입력
2005.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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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으로 보았을 때 요즘 한국사회의 상류층과 중산층을 하나로 이어주는 공동 매개는 묘하게도 서양 고전주의이다. 이 바람직하지 않은 동질감은 상업건물에 가장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보자. 상류층이 모여 사는 압구정동의 갤러리아 명품관과 중산층이 애용하는 수유리의 빅토리아 예식장은 모두 서양 고전주의로 디자인되어 있다.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청담동의 디자이너 옷가게들이나 압구정동 현대백화점도 서양 고전주의 건물이다. 현대백화점 내에서도 외국 명품을 파는 코너는 실내장식까지 그렇다. 고급호텔에도 이런 경우가 꽤 여럿 있다. 반드시 상업 건물일 필요도 없다. 강남이나 서교동 등 시내 곳곳에는 고급 오피스 빌딩이 중후한 서양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중산층의 경우에는 예식장이 특히 두드러지지만 잘 살펴보면 호프집, 근린생활시설, 러브호텔 등 다른 예들도 많이 있다.

이런 현상 뒤에는 상업행위에 대한 권위를 전통양식에서 찾되 우리 것으로는 안 되고 서양 것이어야 된다는 잘못된 사회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상업건물을 전통양식으로 지어 권위를 부여하려는 것 자체는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그것이 서양 고전주의라는 데 있다. 상류층은 상류층대로, 중산층은 또 그들대로 선호하는 서양 고전주의가 있고,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두 계층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서양 고전주의로부터 권위를 빌려 그것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비뚤어진 욕망이다. 욕망의 내용에서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른 차이점이 관찰된다.

차이점을 먼저 보자. 상류층의 고전주의는 디테일이 적게 쓰인 단순한 경향을 보인다. 돌출 정도는 깊지만 끝은 둥글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경향을 건축적으로 해석하자면, ‘음영을 깊게 내어 권위는 갖추되 각진 날카로움을 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나타나며 미니멀리즘 풍의 현대식 세련됨을 함께 갖추겠다’는 의도이다. 이것은 서양 고전주의로부터 지배구도를 굳히는 정치적 권력적 권위를 빌리겠다는 의도이다. 우리나라 상류층의 가식 구도가 그대로 읽힌다.

중산층의 고전주의는 디테일을 좀 더 직접적으로 차용하는 차이를 보인다. 장식이나 부재별 사용에 집착한다. 이를 통해 자신들도 서양과 똑같이 닮을 수 있음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아직 서양을 그대로 열심히 좇는 일이 성공의 지름길인 상황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서양을 있는 그대로 모방해서 성공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상류층의 ‘중후한 미니멀리즘 풍’의 고전주의로 옮아갈 것이다.

이런 차이와 상관없이 두 경향 모두 디자인의 정확도에 문제가 있다. 본바닥보다도 더 많은 수의 서양 고전주의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지만 정확한 어휘와 양식을 구사한 예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꾸준히 그런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것은 건축이나 조형성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무엇인가 절실한 사정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서양 전통의 권위를 빌리고 싶어 하는 절박함이다.

구체적 예를 들어보자. 박정희 때 민족주의 바람을 타고 부산, 경주, 제주 등의 특급 호텔에 한국식 지붕을 얹은 디자인이 잠시 유행한 적이 있었다. 서울의 신라호텔도 대문과 영빈관은 이 디자인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촌스럽다는 평과 중국풍이라는 평 등이 뒤따르며 전통양식을 쓸 때에는 서양 고전주의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의 전통은 재래적인 것이라 촌스럽다는 인식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는 있지만 그것은 화석화한 문화재에 국한될 뿐 실생활에까지 파급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풍이라서 싫다는 것은 1980~90년대 미국의 영향력이 반영된 결과이거나 유럽여행 붐이 일면서 서양 고전주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결과이다. 이탈리아의 신전이나 프랑스의 궁전을 직접 가보고 감탄한 사람들이 결국은 국내에서 특급호텔을 이용하는 고객과 겹치기 때문이다.

대학교 건물들은 상류-중산의 구별과는 별도로 서양 고전주의 건물의 또 다른 중요한 산실이다. 일단 연세, 고려, 이화의 3대 사립이 모두 선두주자이다. 연세와 이화는 서양 선교사들이 세웠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여기에 고려까지 가세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 세 대학들이 요즘 짓는 건물들도 모두 서양 고전주의 양식이다.

최근에는 다른 대학들도 가세했다. 숙명여대는 이들 세 대학보다 더 중후한 정통 서양 고전주의를 표방했다. 세 대학의 서양 고전주의가 단일 건물에 머문 반면, 숙명여대는 안마당까지 갖춘 프랑스 궁전을 종합 세트로 흉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세 대학을 추월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경희도 빠질 수 없다. 참으로 부정확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는 서양 고전주의 양식이 종류별로 쓰이면서 본관, 도서관, 강당 등 주요 시설들을 차례로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지어진 경희 캠퍼스는 경치가 가장 좋다 하여 드라마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며 일부 여대생들이 선호하는 데이트 코스가 돼 있는 형편이다. 한양대는 팔라디오 양식이니 하며 도서관을 이렇게 지었다.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많은 예들이 있다.

지방대학에서도 무수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서양 고전주의를 직접 닮고 싶은 건지, 아니면 여기에서 한 다리 건넌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을 닮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닮기를 통해 지방대학으로서의 열세를 만회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야심이 서양 고전주의를 빌려 표출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심각하게 따져볼 문제다. 이런 건물들을 대학 4년 동안 보고 자란 젊은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서양문명을 맹목적으로 좇게 되는 것은 ‘콩 심은 데 콩 나는’ 이치다.

이처럼 서양 고전주의로부터 권위를 빌리려는 사대주의적 경향은 계층과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넓게 퍼져있다. 이런 현상도 족보가 있다. 시작은 일제 강점기 때였다. 조선총독부, 한국은행, 신세계 본점, 각종 사립교육기관, 교회 등이 모두 서양 고전주의로 지어졌다. 이들을 종류별로 환원해보면 정부관청, 금융기관, 상업건물, 교육기관, 종교건물이 된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기능인 동시에 지배 권력을 이루는 요체들이다. 이런 건물들은 조선시대 유교 왕궁을 순식간에 대체하며 서울의 심장부는 물론이고 전국의 도시를 급속도로 점령했다. 이런 건물들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뒷받침하는 물리적 틀을 제공했다.

일제가 물러가면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미국이 밀고 들어왔다. 인종과 언어와 체제는 바뀌었지만 건물이라는 물리적 틀은 잘 들어맞았다. 이는 미군정이 친일파를 선호하여 해방한국의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낙점한 것에 해당되는 건축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지배 외세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갔는데도 옛날 건물이 이렇게 잘 들어맞으며 긴요하게 쓰일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싹 헐고 새로 짓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큰 민족적 비극이었다.

우리는 아직도 여기에서 못 벗어나고 그 끝 자락에 서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최근에 탈세혐의로 물러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소유하고 있던 빌딩도 서양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상류층에서 시작된 서양 고전주의 차용은 중산층에까지 흘러내려갔다. 윗물이 맑아야 하는 법이거늘, 누구를 탓하리요, 이것도 모두 지금 우리의 자화상인 것을.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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