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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우리 모두의 '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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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우리 모두의 '내 새끼들'

입력
2005.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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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웠거나 참혹했거나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평생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8살 때 겪은 나의 6.25는 어린애의 제한된 경험이었지만, 해마다 6월이 오면 그 상처가 되살아 나곤 한다. 나이 들수록 더 아프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올해는 더 심했다. 오늘이 6ㆍ25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TV에서 동료의 총기난사로 숨진 장병 8명의 장례식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는 가족들, 쓰러지는 어머니, 동료 장병들의 흐느낌으로 장례식장은 눈물 바다였다.

”아이구 내 새끼, 아이구 내 새끼”라고 부르짖는 한 어머니의 소리가 들려왔다. 슬픔으로 탈진한 기운 없는 목소리가 더욱 절절하게 들렸다. 국토방위를 하러 군에 갔던 내 아들이 동료의 총에 맞아 죽다니, 가엾어서 어쩌나, 보고싶어 어쩌나, 어머니의 절규는 피를 토하는 듯했다.

6ㆍ25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지 55년이 지났는데, 오늘 중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흘린 젊은이들의 피는 또 무엇인가. 흑백필름으로 남아있던 55년 전의 전쟁에 그 어머니의 절규가 다시 선혈을 뿌리고 있었다. 분단의 비극이 55년이나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아팠다.

지난 19일 새벽 최전방 경계초소(GP) 내무반에서 김동민 일병(당시 22세)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여 초소장 김종명 중위 등 8명을 살해한 사고는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우리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군을 향한 질책이 빗발치고 있다. 군의 기강해이가 위험수위를 넘었고, 신세대 장병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고,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등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서 우리는 병사들이 ‘칼잠’을 자고 있는 내무반 침상과 괴롭게 마주쳤다. 얼굴을 가리고 싶은 부끄러운 광경이다.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 몸을 뒤채기도 힘들 만큼 비좁게 누워 잠자는 병사들, 이런 비인간적인 잠자리에 병사들을 재우면서 ‘신세대 장병 관리’ 운운하는 것은 말장난이다. 구세대인들 그런 잠자리에서 견디겠는가.

국방부는 2003년 병영 내 성범죄가 크게 문제가 되자 예방 대책의 하나로 내무반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전군의 막사를 개선하려면 10조 이상이 필요하고, 지금 예산 형편으로는 앞으로 10년이 걸려야 모든 내무반을 침대형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이번에 사고가 난 초소에서도 부대원 30명이 15평의 내무반에서 잠자고 있었다. 초소를 방문했던 윤광웅 국방장관은 사고현장의 참혹함과 내무반의 초라함에 함께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장관의 뒤늦은 충격이 아쉬울 뿐이다.

현재 우리 병사들이 사용하는 내무반 면적은 1인당 0.7평으로 미국 일본의 3평, 캐나다 독일 중국의 2.6평에 크게 뒤진다. 우리나라 감옥에서 죄수들이 사용하는 면적보다도 떨어진다니 분개할 일이다.

동료 병사들에게 수류탄과 총기를 난사한 김동민 일병은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였다고 짐작된다. 인터넷으로 폭력적인 게임을 즐기며 스스로 고립돼 있었다는 점 등에서 신세대의 특징도 있었던 것 같다. 신세대 병사들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준다.

그러나 군의 내무반 실태는 신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발전을 자랑하는 나라, 안보가 중요한 나라, 6ㆍ25 전쟁의 비극이 아직도 지속되는 나라에서 이런 비인간적인 시설에 병사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아이구 내 새끼, 아이구 내 새끼”라고 그 어머니는 울부 짖었다. 우리 모두의 ‘금쪽 같은 내 새끼들’이 가있는 곳이 군대다. 안보를 맡긴 병사들에게 칼잠을 재우며 국민이 단잠을 잔다면 그것은 균형이 크게 깨진 병든 나라다. 병영시설과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

한국일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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