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인가,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것인가.’
정부가 11월 일괄분양 예정이던 경기 판교신도시를 공영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함에 따라 공영개발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시민단체는 공영개발이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투기적 가수요를 차단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환영하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는 주택도 소비재와 같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26일 판교 공영개발을 처음으로 주장한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 본부장과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 윤영식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를 초청해 공영개발의 득과 실을 알아보고,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바람직한 부동산 정책을 모색해 보는 토론회를 열었다.
_최근 정부가 판교 공영개발을 검토키로 하면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데.
▦김헌동 본부장= “정부가 공영개발을 검토한다고 최근 발표한 뒤부터 공영개발이 부각되기 시작했지만 사실 판교를 공영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지난해 6월에 나온 것이다. 올 3월에도 재차 주장했지만 시장이 귀를 막고 들어주지 않았다. 공영개발은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다. 국민에게서 택지를 사들였으니 땅 장사하겠다고 민간 건설사에 되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소유하라는 것이다. 그 땅에 임대주택을 짓고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땅을 수용해 일반에 쪼개 파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주택을 사고파는 소비재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집이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선덕 소장=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판교의 개발기본계획안이 다 마련된 데다 분양 일정을 불과 수개월 남겨 놓은 상태에서 정부가 판을 뒤흔드는 것은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판교 지역에 대한 입지적 여건도 고려해 봐야 할 부분이다. 판교는 분당과 강남에 인접해 있는 만큼 강남ㆍ판교 대체 수요를 흡수해 특정지역 가격 안정 역할을 해줘야 한다. 물론 공공이 나서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지만, 중대형 평형에 대한 수요는 민간이 맡아야 한다.”
▦윤영식 교수= “공영개발 자체보다 최근 강남과 판교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강남이나 판교가 급등한 것은 단순히 개발 기대감때문 만이 아니다. 준농림지 감소, 용적률 축소, 재건축 규제, 까다로운 지구단위계획 등의 영향으로 사람들 마음에 ‘주택공급이 줄어들 것’이란 심리가 생겨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정부는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른다는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판교 공영개발이 서민 주거안정 등 긍정적인 효과 뿐 아니라 부작용도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윤 교수= “일장일단이 있다. 우선 공영개발이 되면 분양가 인하 효과가 있다. 공공이 하는 사업인 만큼 원가도 공개될 것이고 개발이익환수도 민간에 비해 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인근 아파트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까지 감안하면 공영개발은 주변 부동산 시장 안정에 상당부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싼 값에 분양될 경우 피분양자들이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는 시장 현실을 감안할 때 시장의 투기장화가 불 보듯 뻔하다. 또 원가인하 압력이 세질 수밖에 없어 부실시공과 주택품질 저하 우려도 제기된다.”
▦김 본부장= “우리나라 주택 1,300만 가구 중 2%인 30만 가구만이 정부 소유다. 정부 소유 주택이 늘어나면 집값 폭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공택지에서 지어지는 주택 중 20%는 정부가 일반에 팔지 말고 보유해야 한다. 물론 사업비용 마련을 위해 상업용지와 업무용지는 분양해야 한다. 30년 전 건설된 지금의 강남 아파트들은 불과 120만~150만원에 공급됐던 것이다. 지금은 가격이 무려 1,000배 가량이나 뛰었다. 정부가 가지고 30년간 임대사업을 했더라면 강남발 주택가격 폭등도 없었을 것이다. 공공이 주택을 개발해 서민에게 공급하고 투기세력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면 시장은 안정된다.”
▦김 소장= “판교가 과열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공공이 개발사업을 맡아 판교를 임대주택 위주로 짓자는 공영개발론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개발을 하면 모두 이득을 본다는 얘기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 판교와 같이 인기가 집중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공공택지라고 해서 모두 공영개발로 간다면 주택공사 등 공便?자칫 부실화할 우려가 있다.”
_강남과 판교발 부동산 급등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강북 뉴타운 사업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도 특별법까지 마련하며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강북의 강남화’다, ‘또 다른 투기 부추김’이라는 등의 논란이 있다.
▦김 소장= “강북을 강남화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단지 업그레이드 될 뿐이다. 정부는 신도시를 짓는 방식에서 기존 도시를 관리하는 쪽으로 도시계획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아직 강북지역에 대해서는 개발 위주의 정책만 남발되고 있다. 특히 4대문 안 도심 문제 해결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 안타깝다. 서울 외곽에 신도시만 건설하고 강북을 개발한다고 해서 집값이 잡히는 것은 아니다. 강북에 부족한 교육 문화시설을 늘려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윤 교수= “부분적이고 산발적인 뉴타운 개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강북 전체를 하나의 틀로 묶어 재개발해야 한다. 강남이 인기지역으로 부상한 것은 도로 등의 기반시설이 계획적으로 갖춰졌기 때문이다. 도로망을 전체적으로 개편하고 그 후 순차적으로 지역을 개발해나가면 30년 후면 강북은 확 달라질 것이다. 정부도 강북의 인프라 구축에 적극 지원해야 한다.
▦김 본부장= “강남을 잡기 위해 강북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 또 뉴타운 개발에 앞서 정치가들은 도시개발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이는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부분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로 구성된 도시계획 의결기구의 설립이 절실하다. 외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 독립적 성격을 지닌 기구가 설립되면 건설 관련 부조리와 비리도 사라지고, 계획에 따른 체계적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앞으로 어떻게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인가’하는 철학적 접근도 필요하다. 뉴타운 개발은 자칫하면 강북 집값 올리기가 될 소지가 높다.”
-8월에 발표될 부동산 정책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될지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시장불안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인가.
▦김 소장= “우격다짐을 해서라도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강박관념이 오히려 터 큰 화를 불렀다. 지금까지 쏟아냈던 대책들이 발표 직후 당장 효과가 안 보인다고 해서 과격한 대책들을 더 만들어 내는 것은 시장을 왜곡시킬 뿐 결코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 집값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주택 경기에 따라 주기를 탄다는 얘기다. 지금은 공급 과잉의 막바지에 있는 만큼 무리한 정책을 쓰면 안 된다. 물론 저금리 때문에 과도한 시중 자금 유입으로 급등세가 지나친 점은 있지만, 공급확대에 따른 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아파트 평균 사업 기간인 2년 반 정도는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재건축 등에 걸쳐 규제를 완화해갈 필요도 있다고 본다.”
▦윤 교수= “최근 부동산 가격은 시장 상황 못지않게 시장심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가격이 오를 것이란 불안심리를 해소해야 시장이 안정될 것이다. 그 일환으로 강북 개발과 함께 강남 재건축 규제도 다소 완화해야 한다. 내진설계가 들어가지 않은 1980년대 건물까지는 재건축 위주로, 그 이후는 리모델링 사업으로 주택이 개량돼야 한다. 저금리로 시중 자금이 부동산에만 몰리는 현상도 해결돼야 한다. 증시 등 다른 곳으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물꼬가 나야 한다. 앞서 지적된 도시계획 전문 상설기구 설립에도 동의한다. 부처간, 당정간, 지자체간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수시로 말을 바꾸거나 엇갈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시장은 혼란에 빠질 우려가 크다.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내려 시중에 매물이 많이 나오게 해줘야 가격도 내려갈 것이다. 무주택자와 1가구 2주택 이상인 사람에 대한 이자율 차별화 등도 논의될 수 있는 부분이다.
▦김 본부장= “거래는 투명하게 하고 집 부자에 대해서는 보유세를 누진 과세해야 한다. 주택 관련 통계를 제대로 공개하는 것 만으로도 일정부분 시장 안정 효과를 볼 수 있다. 국민 1%가 전체 국토의 50%를 소유하고, 상위 5%가 70%의 부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부동산 소유 구조에는 문제가 있다. 필요 이상의 부동산을 가진 자에게는 양도세를 강화해야 한다. 과도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고통스럽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시장은 안정된다. 종합부동산세도 더 강화해야 한다. 현재 보유세는 선진국의 20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참여정부 임기 내에 보유세를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 실거래가액의 0.5%까지 올려야 한다. 거래세는 현상태를 유지하거나 다소 완화해도 무방하다.”
정리=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