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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꽃 피거든 날 생각하면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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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꽃 피거든 날 생각하면서 봐!"

입력
2005.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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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도 하순, 아파트 창 밖은 푸르름으로 한껏 짙다. 변화가 무쌍한 들판을 보노라면 사람의 생애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모든 생명이 그럴 것 같다.

지난 겨울 베란다의 꽃나무를 낙엽으로 덮어 주었더니 모두 죽고 하나가 목숨을 구했다.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 틀림없다. 얼어죽을까 봐 한 일이었는데 수 년 동안을 잘 견디며 살아온 꽃나무를 죽게 한 것이었다. 남은 하나가 병고에 시달리다가 이제야 꽃망울을 피워낸 것이다.

“꽃 피거든 날 생각하면서 봐!” 8년 전 아파트 아래층에 살았던 할머니가 아내에게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순백의 꽃망울을 보면 수줍은 듯 청초함이 그 할머니를 보는 듯싶다. 그런데 미안하고 죄스럽기 그지없다.

할머니와 우리 내외는 가족처럼 각별했다. 서울에서 자란 할머니는 결혼한 뒤 가정부도 두고 사는 여유 있는 생활을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아들 형제를 홀로 키워야 했다.

큰아들은 교사가 됐고 작은아들은 외국계 기업에 취직했다. 두 아들은 분가했고 할머니는 경기 안산에 홀로 살았다. 할머니가 쓸쓸하다고 심정을 털어놓을 때면 자식이 무슨 소용일까 싶어 가슴이 아파왔다. 그런데 언제인가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아들이 모시게 된 것일까? 병이라도 난 것은 아닐까? 궁금하고 걱정됐다.

1년 뒤 어느날 전철역에서 눈에 익은 얼굴을 보았다. 할머니였다. 경기 군포시 부근으로 이사 왔는데 월세 방에 혼자 살면서 전화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복지회관에서 수의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 전에는 사무실 청소를 했는데 몸이 불편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분 연세가 올해 일흔이다.

큰며느리와의 갈등으로 10년 째 연락을 하지 않는 데다, 믿었던 작은아들마저 며느리가 싫어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손자들이 보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며 남편 복이 없으니 자식 복인들 있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아들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하얀 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꽃이 할머니의 머리 색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 피거든 날 생각하면서 봐!”라던 할머니의 말씀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대규ㆍ경기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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