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없던 조선시대, 나라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는 아주 꼼꼼한 그림으로 기록했다.
예를 들어 큰 잔치를 하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즉 초대받은 손님들과 구경꾼, 음악과 춤으로 흥을 돋구는 사람들, 차려놓은 음식과 온갖 치장, 임금과 왕실 가족을 호위하는 병사들까지 깨알같이 그려넣었다. 정확하고 치밀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진 이 그림들은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임금님의 효행길’은 이런 궁중기록화 가운데 지금부터 200여 년 전 정조대왕의 화성(지금의 수원) 행차를 그린 ‘화성능행도’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정조대왕은 1795년 윤 2월 9일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화성으로 출발한다. 이튿날 저녁 화성에 도착한 정조는 거기서 사흘 간 머물면서 특별 과거시험을 열고 군사훈련이며 활쏘기를 하고, 어머니의 회갑연도 했다.
‘화성능행도’는 정조가 화성에서 베푼 주요 행사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을 8폭 병풍에 담은 그림이다. 이와는 별개로정조를 모시고 가는 행렬을 각자 임무에 따라 서는 위치와 차림새 그대로 그려넣은 ‘반차도’도 남아있다. ‘반차도’에는 무려 1,700여 명의 사람과 800여 마리의 말이 등장, 임금의 행차가 얼마나 위풍당당하고 화려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정조의 행차를 따라가며 구경하는 식으로 씌어졌다. ‘반차도’의 구석구석, ‘화성능행도’의 한폭한폭을 꼼꼼히 뜯어보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각 장면이 담고 있는 이야기 뿐 아니라 거기에 나타난 조선시대 풍습이며 제도, 문화, 사회상까지 짚어준다. 정조가 화성을 건설하고 행차한 사연과, 이를 둘러싼 당시 조선의 정치 상황 같은 배경 지식도 적절히 넣고 있다.
지은이가 왕의 행차와 주요 행사를 흥미로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어서인지 어떤 대목의 설명은 꼭 중계방송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중계방송 흉내를 내자면 이렇다. <화성으로 출발하는 임금님 가마의 창이 열려 있네요. 백성들 사는 모습도 보고 직접 대화도 할 겸 열어 둔 것이죠.> <임금님이 드디어 한강을 건너 대궐로 돌아오고 계십니다.< p>임금님이> 화성으로>
배 38척을 잇대어 다리를 만들었군요. 상인들에게 빌린 배들이라 망가지면 나라에서 수리비도 준다고 합니다. 그 다리로 1,800여 명의 사람과 말이 건너고 있습니다. 정말 굉장한 광경 아닙니까?>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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