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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장발과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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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장발과 모자

입력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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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집마다 모자가 몇 개씩은 있다.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이 있는 집은 더욱 그렇다. 우리가 젊은 시절엔 모자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 때는 모자가 귀했는가 돌아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때 우리는 너도 나도 장발을 하고 다녔다. 장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면 이내 머리카락이 머리통에 짝 달라붙고, 모자 자국까지 생겨 장발 머리로서의 폼이 제대로 안 난다.

장발 머리의 첫 번째 폼은 한 줄금 바람에도 긴 머리를 살짝 날리는 모습이다. 그게 큰 멋인 줄 알았다. 게다가 경찰이 가위까지 들고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을 지키던 때라 어떻게든 그 머리를 잘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당시 장발은 유행이었던 동시에 그런 공권력을 향한 무언의 저항이기도 했다.

그러다 여름 방학이 되어 시골집에 내려오면 그때부터는 매일 창이 넓은 밀짚 모자를 써야 했다.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들일을 나가고, 또 매일 풀밭에 나가 소에게 먹일 꼴을 한 리어카씩 베어 와야 했다. 그때는 일할 때만 모자를 썼는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집에 모자를 여러 개 두고도 쓸만한 모자가 없다며 늘 새 모자를 찾는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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