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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허, 참

입력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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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만드는 일은 입장을 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편집 방향과 입장을 정하기 위해 찬반을 따지고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매일 매 시간 수 없이 이루어 지는 어려운 작업이다.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서는 피하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다. 반대가 예상되는 사안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주장한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집값 소동이 사회탓?

월터 리프만은 일찍이 편집인이 자기 신문에서 가장 강력한 입장을 쉽게 취할 수 있는 경우는 그 입장에 대해 사회의 반대가 별로 없거나 전혀 없을 때라고 말했다.

위험부담이 가장 적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특정 집단의 마음을 상하게 할 염려도 없는 경우는 바로 반대가 별로 없거나 전혀 없을 때이다. 어머니와 국기를 지지, 찬양한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화를 내지 않는다. 공격을 회피하는 것은 상업적인 기업인 신문으로서는 좋은 장사법이다.(현대언론사상사ㆍ나남출판)

당연한 소리 같은 리프만의 이 말을 신문 일선에서 느끼기에는 피할 수 없는 결정의 고통을 표현한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곧 그가 묻는 질문은 “그런 입장이 반드시 정당한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지면은 손쉬운 입장이지만 사회가 처한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반문이다. 강력해 보이지만 쉬운 입장은 뜻도 없이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문제를 두고 당연하고 듣기 좋은, 결코 틀리지 않은 말은 아무리 힘주어 해도 공허하다.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 하나가 바로 이런 공허함을 남겼다.

“부동산 정책에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해 답은 다 있다. 그런데도 이런 정책이 채택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이해관계와 잘못된 관행 때문”이라고 한 말이다. 채택되지 못하는 정책을 새삼 말할 필요가 없으며 답이 나와있는 정책이면 채택하면 그만일 텐데, 이게 웬 말인가.

허, 참. 공허하고 허탈하다.

온통 집값으로 시끄러운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집값 정책이 어떤 정책인가. 후보 시절 “집값은 직접 잡겠다”고 한 것부터 시작해서 집권 2년 반 사이 가장 역점을 두고 편 정책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집값으로 대소동이 벌어졌으면 내용이 무엇이든, 이유가 어떠했든 그 정책은 실패한 것이다. 대통령은 마지막 책임을 지는 자리인데, 대통령이 실패의 원인을 사회로 돌렸다.

옳지 않고 정당하지 않다.

진정한 답이라면 사회가 승복하고 따랐을 것이다. 또 사회가 따를 만한 답이라야만 그 것이 진정한 답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 사회의 이해관계를 설득하고 조정하는데 힘쓰는 과정, 그 산물이 정책이어야 한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다른 주변이 잘못됐음을 힘주어 말하는 것은 가장 쉬운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필요한 답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 답은 오답이다.

실패의 원인을 사회로 돌려서는 절대 성공하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대부분의 국민이 보기에 정권과 정부의 잘못은 자신들에게 있다. 친구 같은 사람을 헌법재판관에 내정하고, 선거에서 경선에서 실패해 이미 판정이 내려진 사람들을 장관에, 공기업 사장에 임명하고도 아무 느낌이 없어 보이는 정권은 온전하지 않다.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잘잘못을 가리지 못할 만큼 사회는 어리석지 않다. 여당에서 노선투쟁이 한창이었던 지난 연말 실용파 쪽에서 외쳤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국민정서에 동떨어지거나 지나치게 이상적인 입법은 혼란만 야기할 뿐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다.” 답은 나와 있다. 노 대통령은 가까운 곳부터 돌아봐야 한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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