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정말 무엇을 보는 것일까? 상대가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들이란 게 있을까?
브리짓 존스가 일기에서 연하남에 대한 셀레임을 감추지 못할 때, 우리의 삼순이가 자신도 모르게 싹튼 사랑에 눈물 지을 때. 이유야 뻔하지만, 그게 다 과정이 있고 시각 청각 후각 촉각과 호르몬 작용이 결부된 인과의 작용이라는 걸 누구라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저술가로 활동하는 파트릭 르무안은 ‘유혹의 심리학’(원제 ‘유혹ㆍSeduire’)에서 이런 유혹과 사랑의 행동이 발생하는 현상과 원인을 인간은 물론 동물의 다양한 실험, 관찰 사례를 제시하며 설명해 간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말 제목대로 ‘심리학’보다는 유혹과 사랑의 행동학 정도로 설명하는 게 나을 듯 하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에게서 시각적으로 가장 유혹적인 코드는 젖가슴이다. 인간의 영장류 조상은 지금 암컷 침팬지나 비비들이 풍만하고 붉은 빛까지 띠는 엉덩이로 배란기를 알려주는 것처럼 엉덩이를 유혹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두 발로 걷고 허리에 옷가지를 두르면서 엉덩이라는 시각 정보가 사라졌다. 보완재가 젖가슴이고, 브래지어는 그것을 강화하기 위한 문화적인 장치이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자는 남자와 여자가 유혹을 느끼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남자는 여자의 확대된 동공(瞳孔)에 훨씬 매력을 느낀다는 여러 실험 결과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젊은 처자들이 동공을 확대하고 시선을 더 깊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특별한 식물성 안약을 넣었던 것이나, 요즘 서클렌즈가 유행하는 것은 다 그런 이유다. 여자의 경우는 다르다.
남자의 동공이 크고 작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대신 동공의 크기만 다른 동일남의 사진 2장을 잇따라 보여주었을 때 먼저 본 사진의 유혹을 더 받아들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여자들은 제일 먼저 달려드는 남자에게 약하다는 것이니 주저하지 말고 일단 발을 떼고 볼 일’이다.
또 남자는 사냥꾼이자 약탈자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항상 발정기에 있기 때문에 밤낮으로 암컷들을 “아, 실례”, 다른 짝들을 “다시 한 번 실례!” 하는 식이란다. 여자들은 포획물이기 때문에 남자의 마음이 움직이든 말든, 사랑을 느끼든 말든, 그런 신체적인 변화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자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사회학적 변수, 예를 들어 스포츠카의 키홀더, 골프 클럽, 명품 옷 등 사회적인 성공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들이다. 사냥꾼의 체질이라서 시각지향적인 남자에 비해 여자들은 오감 중에서 특히 촉각에 약하다고 한다.
‘정조의 생태학’이라는 제목으로 호르몬 작용이 암수의 사랑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도 재미있다. 초파리는 원래 바람둥이 날라리인데, 초파리의 정액에는 자기 정자가 생식으로 이어질 기회를 최대화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물질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물질이 어찌나 유독한지 암컷의 생명마저 단축시킨다.
그래서 초파리 수컷과 암컷을 생애 한 번만 교미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잔인한 실험이 진행했더니 44대에 이르자 정액의 구성물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쟁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초파리 정액의 유독성이 사라지고, 그 결과 암컷의 수명 또한 연장된 것이다. 인간도 그렇다고 할 근거는 없지만 ‘정조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연인들의 유전자에 이롭게 각인된다’.
하지만 물론 이런 윤리적인 결론이 유혹의 코드를 확인해야 하는 본질은 아니다. 저자는 책 끝에서 저자는 ‘사랑은 섹스 이상’이라는 제법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지만, ‘제대로 유혹하기’ 법이 실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더 재미있고, 더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개들 세계에서는 꼬리를 흔든다든가 귀를 늘어뜨린다든가 하는 것은 친밀감을 나타내는 신호이지만 고양이에게 그 모습을 공격성의 표시일 뿐이다. 남성은 여성을 웃게 만들면 확실히 유혹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는 전혀 아니다. 남성을 웃기는 여성이 유혹에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 여성은 웃음을 가지고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당신 재미있어요” 라고 말하면서 그 남자가 자신을 웃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줄 때 여자는 유혹에 성공하는 것이다. 북폴리오가 새로 내는 마인드북스 시리즈 첫 권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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