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족에게는 친숙한 모습입니다. 갈색 피부의 여인이 화려한 옷을 입고 온천 근처를 돌아다니는 장면이지요.” 22일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원주민(고산족ㆍ 高山族) 야사 티에무(46)씨는 뒤에 세워 놓은 그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인의 옷에 빨강, 초록을 입히던 참이었다.
야사씨는 타이베이 교외의 울라이 원주민촌에 거주하는 화가다. 온천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11개 부족 43만 명이 모여 산다. 야사씨가 속한 타이야족은 6만 명 정도다.
대만 전체 인구 중 원주민은 약 2%. 6,000년 전 주변 태평양 섬들에서 울라이로 이주한 이래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는 자급자족 생활을 해 왔다. 수천 년 간 이들이 누렸던 평화로운 삶은 그러나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황폐해졌다. 대만 정부가 경제 개발을 추진하면서 원주민촌도 ‘발전해야 할 대상’이 됐다. 부족 고유의 전통과 관습은 점차 과거가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야사씨는 “내 그림의 주제는 ‘뒤돌아보기’”라고 말한다. 그림 속에서 원주민들은 농사를 짓고 베를 짜고 달빛 쏟아지는 강가에서 사랑을 나눈다. “모두 기억에서 나온 장면들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부족 언어를 모릅니다. 내 그림을 보고는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살았구나’라면서 신기해 하지요.” 야사씨의 말투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원주민촌 관광 허용 얘기가 나왔을 때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대나무 집이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는 것을, 집안에 온갖 현대적인 가재도구가 들어차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옷은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축제 때만 입는 예복이 됐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잡한 기념품 가게와 출장 요리 레스토랑이 생겼다.
화가도 그림만 그려서는 먹고 살 수 없다. “하이킹하려는 관광객에게 산길을 안내해 줍니다. 아내가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데 먹을 거리가 필요해요. 마당에서 채소도 기르고 덫을 놓아 멧돼지도 잡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림 그리기를 계속한다. 부족의 전통과 기억을 보전하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편한 도시 생활을 동경하는 많은 원주민들이 울라이를 떠나고 있다. 야사씨의 동생들도 일찌감치 도시에 자리잡았다. 두 아이들마저 가버릴까 걱정이다.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지요. 이웃에는 큰 천에 아름다운 수를 놓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들한테 배운 것이고 자녀에게도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원주민의 예술 작품입니다. 사라지도록 놓아둘 수는 없지요.”
김지영 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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