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면에서 자주 뵙습니다. 그만큼 마음 고생이 많으시겠지요. 6월 1일자 청와대 브리핑에 토로하신 대로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주춧돌을 놓는” 심정으로 일하고 계실 텐데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 형국입니다.
기사들을 보고 좀 의아했습니다. ‘이정우 “靑위원회에 대한 비난은 훈구파의 공격”’(한국일보 6월 3일자 A6면), ‘참여정부 현안 이순신에 빗대 설명 이정우 웬 자화자찬’(경향신문 9일자 5면) 등등. 느닷없이 훈구파는 무엇이고 이순신 장군 얘기는 왜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문을 찾아 보았습니다.
“참여정부를 아마추어 운운하는 사람도 조선 시대에 가물에 콩 나듯 몇 차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사림파가 번번이 좌절하고, 훈구파가 득세하는 것을 보고는 역사의 후퇴를 개탄했을 것이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세상의 근본원리는 다르지 않은데, 왜 들이대는 잣대는 이렇게 다른가?” 위원장께서 그 핵심 중의 핵심인 현 집권층을 사림파와 동일시하고 있는 듯하다는 느낌 외에는 이 문장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사림파는 “번번이 좌절”하지도 않지요. 심지어 노론 일당 독재를 거쳐 세도 정치로까지 타락합니다.
5월에 계룡대에서 한 강연을 8일자 청와대 브리핑에 요약해 실은 글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더군요. “이순신 장군이 훌륭한 점은 (…) 이순신 장군한테 가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이 군사력뿐만 아니라 국민의 지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이순신에게서 배울 수 있다.” 특히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로 병(兵ㆍ국방), 식(食ㆍ경제), 신(信ㆍ신뢰)을 들었다.
제자가 공자에게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을 버리느냐고 질문하자 공자는 병을 버리라고 답했다. 제갈공명 역시 군사를 가지고 전쟁을 하는 것은 하책이며, 마음을 가지고 전쟁을 하는 것이 상책이라 말했다”는 구절이 좋았습니다.
궁금한 것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강조한 이순신과 공자의 예화에서 어떻게 참여정부를 칭찬하는 근거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국민의 믿음과 기대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데 있는 것 아닙니까?
명민하신 분이 바로 이 대목에서 많은 이들과 시각이 다르다는 사실이 저는 참 안타깝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신윤석 국제부장 대우는 “와룡이 봉추가 돼 가는가… 공명의 부채를 휘둘러야 할 사람이 운장의 청룡언월도를 들려 하고 있으니…”라고 하더군요.
참, 사림파 말씀을 하시니까 ‘혁신’ 정치의 원조라 할 조광조(1482~1519)에 대한 후배들의 평이 생각납니다. “공은 안타깝게도 학문이 이루어지기 전에 너무 급히 요직에 올랐다.
위로는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지 못하고, 아래로는 권문세가의 비방을 막지 못해…. 몸은 죽고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뒷사람들이 (조광조처럼 될까) 경계하여 감히 바른 정치를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이 이). “임금을 요순처럼 받들고 백성에게 요순의 덕택을 입히려는 것이 군자의 뜻이기는 하나 당시의 사세(事勢)와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할 수 있겠는가?”(이 황).
한 가지 더. 공자를 많이 인용하시던데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ㆍ군자는 잘못을 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도 물론 알고 계시겠지요?
이광일 기획취재부장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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