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가볍게 먹을 생각입니다.” 20일 청와대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이런 말로 마무리 지었다. 한국일보 도쿄지국 사무실에서 TV로 이를 지켜본 기자는 노 대통령의 답답한 마음이 느껴져 쓴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날 밤 일본 정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정상회담에 대한 이런 저런 질문을 한 뒤 “저녁을 가볍게 먹겠다고 말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물었다.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말 그대로 어려운 주제로 회담했으니까, 식사만은 마음 편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22일까지 일본 사람들로부터 추궁에 가까운 질문을 받으면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러 명의 일본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선“일본을 가볍게 대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일국의 총리에 대한 대접이 밥집만도 못한가”라는 등 단정적인 질문마저 나왔다.
‘가벼운(輕い) 식사’를 마음이 가벼운 게 아니라 그야말로 ‘밥상이 가볍다’는 뜻으로 곡해했음이 분명했다. “푸짐하게 대접하는 게 동양적 예의”라고 여기는 일본 기자들은 청와대 만찬의 메뉴를 체크해 보니까 인사동 한정식 집보다 음식 가지수가 적었다는 어이없는 말까지 털어놓았다.
기자는 청와대 대변인이라도 된 듯, 해명을 늘어놓으며 일본은 의사소통이 참 힘든 나라임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역으로 양국이 ‘말도 안 되는’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해는 불화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김철훈 토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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