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만큼 치욕적인 하극상(下剋上)의 수모를 당한 정당 대표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17대 총선 직전인 2004년 2월 자신이 임명한 비상대책위원장과 그토록 총애했던 소장파가 주도한 퇴진운동에 밀려 8개월 만에 대표직에서 쫓겨났다. 그것도 모자라 측근이던 공천심사위원장에 의해 지역구(서울 강남 갑)는 물론 비례대표 출마의 기회마저 봉쇄 당했다.
일차적 책임은 물론 그에게 있지만, 이렇게까지 가혹한 처분을 받아야 했는지에 대해선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정국대응 능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가 3김처럼 지역기반이 있거나 공천권을 일부라도 쥐고 있었다면 그런 일을 당했을까. 혹시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다면 어땠을까.
그는 현실정치가 요구하는 힘이 없었기에 생존을 위한 제물(祭物)을 찾고 있던 의원들에게 실제 책임 이상으로 짓밟힌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힘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힘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은 전근대적으로 들리지만, 정당을 이끄는데 있어서 힘은 여전히 결정적이다. 힘이 있고서야 철학도, 친화력도 빛을 발하는 게 정치판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당을 끌고 가는 것이나,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복지부 장관이 여당의 양대 계파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대선 잠재력 덕이다.
이런 점에서 열린우리당이 앞으로도 안정감 있는 집권당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리더십의 정점에 있는 문희상 의장은 대권주자도 아닐 뿐더러 당청분리 원칙 탓에 청와대의 뒷받침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정 장관이나 김 장관이 조만간 당에 복귀할 것 같지도 않다. 일찍 복귀해봐야 당내 경쟁계파와 야당의 표적이 될 뿐이라는 계산일 것이다.
남은 희망은 의원들의 품성(稟性)인데 역시 기대난이다. 특정인이 싫다며 느닷없이 당직을 내던진 대통령 측근이라는 중진과, 대통령 임기가 반도 더 남았는데 정계 개편론에다가 차기 적임자 운운하며 레임덕을 부추기는 의원들의 행태는 상식 이하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터지는 실용파와 개혁파의 갈등은 봉합으론 치유가 안 되는 숙환이다.
당정간 정책협의는 “어디에다 기준을 두어야 할지 난감하다”는 이해찬 총리의 지적처럼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의원들의 중구난방 때문에 혼조에 빠지기 일쑤다.
상황이 이렇다면 여당의 최고 당원인 대통령이 나서는 게 마땅하다. 대통령의 권위로 여당을 다독여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을 연결할 정무장관, 청와대 정무수석의 부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당청분리만 되뇌이며 강 건너 불 구경을 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당청분리인가. 당청분리는 여권이 효율적으로 국정을 챙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지,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당청 분리든, 일체든 일만 잘하면 국민은 개의치 않는다.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청와대 뿐이다.
청와대와 당이 나뉘어졌으니 여당이 아무리 헤매도 대통령은 품위유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우스운 착각이다. 청와대는 중심을 잃고 절뚝거리는 여당을 놔두고 “우리는 분권적 당청 관계를 실현하고 있다”고 자찬하고 있다. 사나운 의원들을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아 일부러 딴전을 피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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