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바우쉬는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안무가다. 폴크방 무용학교 수석졸업, 특별장학생으로 미국유학, 폴크방 발레단 주역, 쾰른 안무콩쿠르 최고상 등 어려서부터 무용가, 안무가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고, 1973년부터 탄츠테아터 부퍼탈을 이끌어 왔다.
탄츠테아터는 무용과 연극이 결합된 공연 형태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고, 같은 의미로 이 명칭을 사용하는 단체도 많다. 하지만 유독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가 유명한 이유는 독특한 안무방식인 ‘공동작업’ 때문이다. 작품을 만들 때 보통은 안무자가 동작을 시범하고 수정하지만 피나 바우쉬는 무용단원들에게 일차적인 안무 전체를 맡긴다.
그 이유는 일상적이고 보편적 감정을 추출하기 위해서다. 안무자가 제시한 주제에 따라 단원들은 각자가 생각해낸 표현을 말, 몸짓, 춤, 괴성 등으로 제시한다. “사람들이 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주 단순한 움직임들로 말하고 싶다.”는 피나 바우쉬에게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안무 비결이다.
이번 한국 소재 신작 ‘러프 컷’(Rough Cut)을 위해서도 무용단 전원이 전통 굿 관람, 청계산 등산 등을 통해 필사적으로 한국을 경험했다고 한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다시 관찰하는 경험은 흥미로웠다. 21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려진 ‘러프 컷’은 특히 철쭉 핀 산과 맑은 계곡물 영상으로 작품의 절정을 장식하며 한국의 자연을 찬미했다.
1부에서는 장작 패는 남자, 종아리 때리며 걷는 여자, 종이꽃 태우기, 슬프게 절규하듯 춤추는 여자, 물 컵 던져 받기, 신문에 싼 배추를 애견 미용하듯 다듬거나 배춧잎을 흔들며 행진하기, 남자들에게 물을 부으며 등목 시켜주는 여자들,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안내원의 반복적 인사, 광적으로 휴지를 빼며 신나하는 남자, 장옷처럼 긴 천으로 머리를 감싼 여인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2부는 서로 때리며 웃는 남녀, 명함을 교환하고는 바로 돌아서는 두 남자, 굿거리장단의 춤, 사람들이 북적이는 에스컬레이터, 광고에 등장하는 ‘사랑해요’ 손짓,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암벽 등반가들, 해병대 출신이라고 말하는 남자, 폭죽놀이 화면에 두려운 듯 뛰어다니는 사람들, 쌍쌍이 포옹하고 대결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옛날 영화, 굿판, 서당, 한옥마을, 노래방, 패션쇼, 일상의 만남, 현실의 삶 등이 연상되었고, 한국 사람의 버릇을 들킨 것 같은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영화의 초벌 편집을 의미한다는 ‘러프 컷’이란 단어는 신선한 것 같기도 하지만 정돈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느낌도 지녔다. 그렇다고 그 이미지에 절대적인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LG아트센터가 제작을 요청한 ‘러프 컷’은 한국의 문화수준을 알리는 첫 국제적 작품으로 큰 가치를 지녔다.
문애령ㆍ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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