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사람이냐”라는 천박한 우스개 말이 있다. 엄한 규제와 각박한 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처지를 자조할 때도 쓴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 예전에는 훈련소에 입소해 군복으로 갈아입자마자 훈련조교가 “이 시각부터 여러분은 사람이 아니다”고 위협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불과 몇 시간 전 훈련소 문 앞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아쉽게 작별한 서운함을 비롯해 착잡한 감정과 생각을 모두 잊게 하려는 엄포다. 그러나 가뜩이나 불안한 훈련병들은 갑자기 사회와 격리된 외딴 세상에 내던져진 듯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전방초소 총기사건의 충격을 접한 사회 곳곳에서 갖가지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나름대로 다 옳은 말이지만 늘 듣던 소리이고,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신통하게 들리는 답은 없다. 군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뾰족한 대책 없는 딜레마에 처한 형국이다. 그걸 깨닫는다면 그야말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만 해법이 보일 듯 하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군인이 사람이냐”는 우스개처럼 군인을 일반 시민과 전혀 다른 존재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분단상황이 비슷했던 독일의 경험을 소개한다. 프러시아 제국군대의 전통과 나치 전력을 지닌 독일은 1950년대 초 민주적 군을 창설하면서 군인을 ‘군복 입은 시민’이라고 선언했다.
군인을 명령복종체계의 일원인 동시에 헌법적 기본권을 누리는 시민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저 상징적인 선언이 아니라, 군인의 지위에 관한 법률 등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를테면 아무리 거친 훈련 때도 모욕적 처우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등 상급자의 지휘통솔권도 병사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도록 보호장치를 두었다.
■이런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감시하는 옴부즈맨을 둔 것은 한층 눈에 띈다. 영어로 ‘군 커미셔너’라는 이름의 옴부즈맨은 의회가 선출하는 의회 보조기관으로, 군내 부당처우와 복지 지휘방식 훈련 등에 관한 모든 불만을 처리한다. 군에 조사를 요구하거나 직접 방문 조사하는 권한을 지닌다.
독일은 이런 노력을 통해 군 조직의 갈등을 완화, 민주적 명령복종체계를 이뤘다. 무엇보다 군과 사회, 군인과 시민을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우리 군과 사회가 딜레마를 벗어나는 데 모범 삼을 만 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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