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억 받아 땅 투기…부도前 팔고 해외로
국민의 정부가 2001년 벤처 지원을 위해 퍼부었던‘돈 잔치’의 후유증이 결국 국민의 짐으로 돌아오게 됐다. 당시 보증 지원됐던 2조 2,122억원 중 절반 이상을 회수하지 못해 이미 국민 혈세 8,046억원이 들어갔고, 앞으로도 6,000여 억원이 추가로 들어가야 할 판이다.
지원금 유용사례
벤처업체들이 정부 지원금을 유용한 행각을 보면, 당시‘벤처 돈 잔치’의 실태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례1(부동산투자)_M회사는 적자폭이 늘고 수익구조가 취약한데도 174억원을 지원 받은 뒤 대표이사가 이 돈으로 부동산, 골프회원권 등을 매입했다가 올 2월 부동산을 판 뒤 부도 발생 다음날 해외로 도피했다.
사례2(주식투자)_C 주식회사는 2001년10월 90억원을 지원받은 직후 40억원을 다른 회사 주식투자에 사용했으며, D 주식회사는 60억원의 지원금 중 41억원을 사모펀드 투자 등에 썼다. 벤처 지원금이 엉뚱하게 주식투자 자금으로 활용된 것이다.
사례3(돈 빼돌리기)_E회사는 20억원을 지원받아 이중 12억원을 대표이사 개인 계좌로 빼돌렸고, S회사는 80억원을 지원 받아 이중 59억원을 대표이사의 다른 회사에 빌려줬다. I회사는 35억원의 지원금을 재무재표상 미국 현지법인에 빌려준 것으로 돼 있으나, 현지 법인이 연락두절 상태다. 이 회사 대표는 올 3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표본조사 97개업체중 31개 업체의 대표이사는 보유 부동산을 모두 매각한 뒤 아예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드러나 벤처업체의 도덕적 해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벤처업체들이 정부 지원금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는데도 기술신용보증은 지도 감독 등 사후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방치했다.
부실 심사 및 계획부터 잘못
사후관리 뿐만 아니라 애초 보증지원 업체를 선정하는 심사부터 졸속이었다. 벤처 지원의 목적은 기술력은 있으나 담보능력이 없는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한다는 것이지만, 감사결과 기술신보는 지원업체 808개 업체 중 717개 기업에 대해 기술평가조차 실시하지 않았다. 특히 신용평가결과 채무상환이 곤란한 기업, 지난 심사에서 탈락한 기업, 기술평가점수에 미달한 기업 등이 71개나 포함돼 1,921억원이나 지원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온갖 청탁과 검은 돈이 거래됐을 가능성이 있으나 감사원이 계좌추적권이 없어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부실은 제도 도입 때부터 예견됐다. 당시 기술신보는 만기가 도래하는 2004년말 코스닥 지수가 1,500에 이르고, 보증사고율은 연 1∼4%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코스닥지수는 380에 머물렀고 보증사고율은 연 11%를 넘겼다. 비현실적인 주가지수 예측을 토대로 무리한 보증 계획을 세운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당시 벤처 열풍이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상태에서 벤처 열풍을 지속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지원한 측면이 있다”며 “벤처업체 당 평균 20억원 이상 돌아가, 결국 정부의 ‘눈먼 돈’을 벤처업체들이 나눠 먹은 격”이라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 2기 벤처대책 '1기 재탕'
정부는 2008년까지 1조원 규모의 투자조합을 만들고 산업은행이 주축이 된 2,000억원 규모의 벤처투자펀드를 별도로 조성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벤처활성화 대책을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DJ정부 당시의 각종 지원책이 1기 대책이라고 한다면 현 정부 들어 2기 대책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2기 대책은 향후 3년간 기술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벤처기업인들에게 10조원 규모의 보증을 제공하면서 연대보증 의무까지 없애는 등 강도 높은 지원내용을 담고 있다.
한번 실패한 벤처기업인들도 보증을 받을 수 있는 ‘패자부활제도’도 도입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지난 8일 창투사가 벤처기업의 경영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추가 대책을 내놓았다. 이 같은 정책 덕택에 벤처와 연관성이 높은 코스닥지수는 지난해 말 380.33에서 16일 490.22로 28.89%나 올라 세계 43개 거래소, 45개 지수 중 최고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2기 대책은 1999년까지 연이어 쏟아졌던 DJ정부의 벤처활성화정책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1996년 코스닥시장 개설 이후로 97년 벤처기업육성특별법, 98년 벤처기업 세제지원, 코스닥 활성화방안, 99년 창업투자조합 출자 지원 등의 각종 대책이 당시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2001년 말 벤처기업의 숫자는 1만1,392개까지 늘어나며 거품이 극에 달했다.
DJ정부의 정책은 크게 벤처창업지원을 위한 보증과 코스닥 활성화였고, 이 두 가지 정책틀은 현 정부에서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이른바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으로 과거 퍼주기 정책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2001년에 비해 보증심사 등에서 크게 개선된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 벤처기업의 파산을 담당했던 관계자는 “보증심사서류는 흠잡을 데 없이 잘 갖춰져 있지만, 막상 직접 들여다보면 빈껍데기인 벤처기업이 수두룩했다”며 “보증기관이 옥석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 벤처업계 "되살아난 투자 불씨 꺼질라"
벤처업계는 감사원 감사결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벤처기업 보증제도가 보증규모 확정에서부터 사후관리까지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돼 온 사실이 드러나자 이로 인해 행여 벤처 투자가 위축되지 않을 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이 달 초 발표한 벤처활성화보완대책에 따라 투자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마당에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벤처업계에서는 과거와 같은 마구잡이식의 벤처 투자와 모럴헤저드는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벤처기업협회의 오형근 부회장은 “정부의 벤처활성화보완대책은 기술평가를 정확히 해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만드는 것이 골자”라며 “특히 벤처투자사들이 경영참여 목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한 것은 기업 인수ㆍ합병(M&A)의 물꼬를 틔워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요즘 벤처업계는 투자 분위기가 살아나는 편이다. 오부사장은 “벤처기업활성화 대책 발표 이후 코스닥 지수가 360에서 485로 뛰었다”며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외국계 투자사들의 관심도 늘고 있다. 한국 시장을 신기술 적용을 위한 임상실험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일본 등 외국계 투자사들은 위성DMB 솔루션 개발업체인 D사 등 국내벤처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벤처업계에서는 모처럼 살아난 투자분위기가 얼어붙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벤처투자사인 벤처라이프의 김종범 상무는 “지금은 유무선 통합, 모바일 콘텐츠 등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때인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며 “작은 실패를 두려워해서 투자를 게을리하면 한국이 세계 정보기술(IT)시장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가 된 프라이머리자산유동화증권(PCBO)은 벤처업계의 옥석을 구분할 만한 장치가 없던 당시부터 문제가 될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며 “벤처투자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안하고 이뤄지는 만큼 과거의 잘못 때문에 국가의 미래가 달린 투자를 위축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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