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 정권을 붕괴시키는 등 필리핀 민주화를 이끈 ‘피플 파워’의 정신적 지도자 하이메 신(사진) 추기경이 21일 오전 6시15분 마닐라 카디널 산토스 메디컬 센터에 선종했다. 향년 76세.
신 추기경의 대변인 훈 세스콘 신부는 이날 라디오방송 DZBB에서 선종을 공식 발표하면서 “추기경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신자들에게 부탁했다. 2003년 11월 마닐라 대주교 직에서 정년 은퇴한 뒤 공개 활동은 뜸했으나, 그는 필리핀 피플 파워의 성스러운 총사령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은퇴하기 수 년 전부터 신장질환과 당뇨병을 앓아온 신 추기경은 지난해 심장마비까지 겪는 등 건강이 악화, 올 4월 교황선출 추기경단 회의인 콘클라베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은퇴 성명에서 “교회가 정치에 관여토록 하는 것이 나의 임무다. 교회 없는 정치는 필리핀의 거대한 재앙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장기 독재와 부패로 얼룩진 필리핀 정치 현실에 대해 가톨릭 교회의 비판적 역할을 강조했다. 또 이 같은 신념을 몸소 실천에 옮겼다.
신 추기경이 국제무대에 등장한 것은 1986년 21년간 장기 집권한 마르코스 대통령을 축출한 ‘피플 파워’의 선봉에 섰을 때부터다. 독재자 마르코스와 결별한 당시 군 참모차장 피델 라모스와 국방장관 폰세 엔릴레를 보호하기 위해 100만 명의 군중집회를 주도, 독재정권에 맞선 용기 있는 모습은 당시 한국 가톨릭 교계와 민주화운동 진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최근까지도 필리핀 민주주의의 옹호자로서 그의 영향력은 입증됐다. 2001년 1월 부패와 실정으로 비난 받던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 하야운동을 주도했다. 2003년 7월 군부가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키자 국민들에게 “폭력으로 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무리들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라”고 촉구해 무산시켰다.
중국계 상인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16자녀 중 14번째로 태어난 그는 1954년 사제 서품을 받고 47세에 세계 최연소로 추기경에 임명됐다.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에 거침없이 비판을 가하는 등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었으나, 산아 제한에 반대하는 등 보수 교리를 엄격히 고수했다. 1995년 ‘도덕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국제회의’ 참석 차 한국에도 왔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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