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원점이었다. 아니, 좌절된 기대와 웬지 모를 모멸감까지 합친다면 오히려 없느니만 못했다는 말도 나온다. 20일 한일 정상이 청와대에서 가진 만남에서 나온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극단 아리랑의 ‘나비’는 이미 그 같은 일을 예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 정신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해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들 부서진 육신을 끌고 나옵니더. 이젠, 그 할머니들을 만나는 게 제일 큰 위안입니더.” 박순자 할머니, 아니 하나코 할머니가 넋두리 하듯 하는 말이다. ‘나비’는 힘 없는 나라, 못 난 남자들 때문에 청춘과 행복을 순식간에 차압당한 한국 할머니들의 집단무의식 속으로 21세기를 데려간다. 원래의 이름 김윤이로부터 박순자, 하나코로 삶이 바뀌어간 어느 조선여인을 좇는 대단히 특수한 페미니즘 연극인 셈이다.
1945년 1월 한 여인이 일본군 위안소 밖 강둑에 내던져졌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에 찔리고, 매독에 문드러진 몸이었다. 중국 남자와 결혼해 종처럼 살던 김 할머니는 뉴욕으로 건너 가 어느 여성단체에서 이른바 여자애국봉사대, 아니 정신대, 또는 군대위안부로 있던 처절한 시간들을 증언한다.
연극은 증언에 앞서 할머니들이 나누는 대화를 배경으로 한다. 이 연극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200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서구인들을 충격에 빠트렸던 작품이 극단 아리랑의 광복 60주년 기념 공연작으로 왔다.
“침대만한 칸막이 방에 갇혀서 우린 밤낮없이 강제로 군인 놈들을 받았어. 상처와 매독으로 썩은 피고름을 흘리며 누워 있을 때도 그 놈들은 기를 쓰고 덤벼 들어 숨 쉴 틈도 안 줬어. 우릴 사정 없이 두들겨 패고, 구둣발과 방망이로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총검으로 살점을 도려냈어.”숨 가쁘게 처절한 기억을 불러내던 이복희 할머니는 간신히 말을 잇는다. “임신이 된 나를 계속 써 먹겠다고 자궁째 태아를 들어 냈어….”
위안소를 달아나려다 잡힌 사람의 운명은 이렇다. “가슴은 고깃덩이처럼 도려내지고 아랫도리는 인두로 지졌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을 시궁창에 던져 버렸어.”살아 나온 자들도 죽느니만 못 하다.
어쩌다 과거가 밝혀지는 날이면 남편부터 거의 미치광이가 된다. “이 더러운 년! 감히 날 속이고 시집을 와? 저 애새끼도 데리고 썩 나가!”
지금껏 누에고치속의 애벌레처럼 숨어 살아 왔던 할머니는 살아 있는 자들을 향해 고해성사를 했다. 함께 자리 한 다른 할머니가 위로하듯 말한다. “훌훌 털고 나면 나비처럼 자유로워질 거요”라고. 기미가요, 황국신민의 서사, 일본군 장교들의 모멸적 언사 따위가 무의식처럼 집요하게 무대를 가득 메운다. 극의 말미, 할머니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출구를 자신들의 운명으로 받아 들인다.
“이제 더 이상 누에고치속 애벌레 마냥 숨어 지내면 안 돼. 훌훌 털고 나면 나비처럼 자유로워 질 거다. 우리 하자. 같이 날아 보자.” 할머니들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안도와 두려움과 슬픔과 희망과 뒤섞여 있다.
명백한 가해자가 반성을 거부할 때, 지금 100명 남짓으로 추정되는 피해자들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인지 객석에 의문을 던지며.
김정미 작, 방은미 연출, 김용선 조한희 김동순 등 출연. 7월17일까지 화~금 오후 8시, 토 3시 7시, 일 4시(02)741-5332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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