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일 수교 40주년/ "잘못 낀 첫 단추"…수교회담 진실 안갯속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일 수교 40주년/ "잘못 낀 첫 단추"…수교회담 진실 안갯속

입력
2005.06.21 00:00
0 0

1962년 11월 12일 오후 일본 도쿄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의 외무성 장관 집무실.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장관은 박차고 일어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자리에 앉히며 “좀더 협상해 보자”고 달랬다. 일본측의 연막전술에 분통이 터진 JP는 “장관과 내가 타결을 결심하고 어떠한 비난도 각오한다면 이 자리에서 청구권 액수를 결정하자”며 감춰뒀던 카드를 펼쳐보였다. 두 사람은 한 두 번 더 흥정한 뒤 간단한 합의문을 만들었다.

“한국의 김종필 특사와 일본의 오히라 외무성 장관은 한국이 주장하는 청구권에 대해 합의했으며, 이 것을 양국 정상의 승인을 거쳐 양국 대표의 공식 회담의 결과로 하기로 결정한다. 일본은 미 달러로 무상 3억달러, 유상(대외협력기금)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 플러스 알파를 지불한다.”‘김ㆍ오히라 메모’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 뒤 1965년6월22일 양국의 정상은 한일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청구권ㆍ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에 관한 협정 ▦문화재ㆍ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 부속협정에 조인했다. 그 후 40년 간 양국 관계는 괄목상대하게 발전했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은 아직 지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 정부가 한일협정 관련 문서를 공개한 이후에는 양국간 타협의 내막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전체적인 합의는 이미 61~62년에 이뤄졌는데도 이 시기의 자료가 누락돼 있기 때문이다. ‘조국근대화’와 ‘경제개발’을 기치로 내걸었던 박정희 정권은 일본 지도자들과의 정치적 타협을 모색했다. 마치 장사꾼이 흥정하듯 거래 금액을 정하고, 거기에 명목을 맞추는 식으로 타협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앞장서서 개인들의 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청구권에 따른 보상인지 경제개발자금 인지 조차 애매하게 만들었고, 한일합방 등 ‘구조약 무효’조항도 확실하게 규정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장면 정부 시절 수교협상의 중개인 역할을 했던 박철언(79ㆍ미국 거주)씨는 최근 발행한 회고록 ‘나의 삶 나의 역사’(한들출판사)에서 “당시 한국측은 배상금으로 18억불을 요구했는데 일본은 12억불로 맞서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받은 종자돈으로 한국을 부흥시킨 것은 분명히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비정상적인 한일관계는 혹시 그 첫 출발이 잘못돼서 그런 것은 아닌지라는 문제제기 아래, 좀 더 근본적인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한일 수교회담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40년 전의 수교는 일본의 주장처럼 관계 정상화의 결말이 아니라, 출발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 향후 쟁점

올 광복절 이전에 2차로 공개될 한일협정 문서는 한일 관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뇌관이다. 1월 청구권 관련 문서 5권을 공개한 정부는 이번에 ‘김종필_오히라 메모’를 비롯, 문서 156권을 공개할 예정이다.

관심의 초점은 협상 과정에서 이루어진 정치적인 왜곡이다. 협정 무효를 주장하고 청구권 문제를 다시 다루자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일제 강점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외교ㆍ정치적 현안으로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로 피해가 입증된 국민들과 유족들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청구권을 행사해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를 받은 정부가 고작 8,300여명에게만 300만원씩을 지급한 뒤 대부분의 자금을 개발사업으로 전용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올 4월 “사실관계가 분명해지면 정부로서는 도리에 따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현재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일정액을 지원하는 방안, 세금 면제 등 간접 지원 방안 등을 검토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직접 지원이 불가피할 것 같다.

정부는 일본측에 ‘성의’를 요구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한일협정에서 논의된 청구권 대상 범위가 징용, 징병, 재산권 침해 등 8개 분야로 한정돼 종군위안부, 원폭 피해자 등 협정 체결이후 진상이 드러난 피해자들에게 정당한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법리에 기초하고 있다. 과거 일본 기업들이 저임금의 징용자들을 착취하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상황도 감안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 너희가 책임져라’ 는 식이 아닌 ‘한국정부가 기본적으로 일제 피해 보상을 책임지는데 일본 너희도 도의적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취지로 설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나치 치하의 독일 기업들이 인근 국가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통해 피해자 지원에 나섰던 선례가 여기에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 기고/ 한일협정 체결 40돌을 되새기며

6월 20일 한국과 일본의 두 정상은 제주, 이부스키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에서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이틀 뒤인 6월 22일은 한일협정 체결 40돌이 되는 기념비적인 날이다. 며칠만 이목을 집중하면 한일관계의 어제와 오늘이 응축된 한 폭의 그림을 보게 될 것이다.

40년 전 이맘때 한국과 일본은 해방과 패전 이후의 양국 관계를 새로이 수립해 국교를 정상화했다. 14년을 끌었던 협상 끝에 유상ㆍ무상을 합쳐 5억 달러에 대일 배상은 정리됐고, 이 자금은 경제개발에 투입됐다. 반면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한일병합조약의 원천무효 문제는 유야무야되고 말았고, 대신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권이라는 조항이 삽입됐다.

이런 한일협정의 틀은 이후의 양국관계 뿐 아니라 한국사회를 규율하는 원점이 됐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선택은 간단명료한 것이었다. 즉 일본의 강점에서 벗어나 건국된 대한민국의 역사적 출발점보다는 냉전의 현실 하에서 북한과의 체제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는 쪽을 우선시했다. 이로 인해 ‘친일파’보다는 ‘빨갱이’의 죄가 더 무거워지는 사회적 풍토가 자리를 잡아갔다. 다소 과장하자면 1965년 6월 22일은 친일파에게 사면령이 내려진 날이었다. 일본의 ‘침한파(侵韓派)’가 ‘친한파’가 되는(일본어로는 발음이 같음) 뒤틀린 인식에 힘입어 군사정권은 30년을 이어나갔다.

1990년대에 들어 소련이 해체되고 중공이 중국으로 바뀌었으며, 북한 주민들이 동포로 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반도 남쪽에 민주화의 기운이 그득하게 번져갔다. 그 틈새를 비집고 ‘나는 위안부였소’라는 한 할머니의 억눌렸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냉전의 종식과 한국의 민주화는 일본의 미진한 과거사 청산을 우리의 당면과제로 인식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일협정에 의해 가동되는 현재의 한일관계와 한국사회의 상황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

2005년은 ‘한일 우정의 해’로 명명됐다. 하지만 반년의 족적을 돌이켜보면 ‘한일 갈등의 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독도 문제와 역사교과서 사건이 한일 양국의 불화를 부르는 근본적인 이유는 잘못 체결된 한일협정에 있다. 그 점에서 지난 해 말부터 한일협정 관련문서가 공개되기 시작한 것은 한일관계의 블랙박스가 열린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게 한일관계의 틀을 재정립하기 위한 용트림이 시작된 것이다. 최근 친일청산이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으로 등장한 것도 이런 변화와 공명하는 것이다. 한일 간은 물론이고 한국 내부에서 역사인식을 둘러싼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청산은 공멸이 아니라 상생의 게임이다. 과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그 해원을 같이 도모하는 일은 새로운 신뢰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좋은 기제로 작용한다. 한국과 일본의 두 정상이 이 역사적인 과업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