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담을 쌓은 사람들이라도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랑훼즈(Aran Juez) 협주곡’ 정도는 안다.
특히 제 2악장, 오케스트라 반주를 뚫고 영롱히 솟아 오르는 기타의 열정적 라틴 테마는 지금도 재해석의 세계로 새로운 연주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악기와 음악장르를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는 그 행렬에 재즈 하모니카 주자 전제덕이 뛰어들었다.
3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의 단독 콘서트. 이 고난도의 곡을 소화해 내느라 그의 하모니카는 분주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하모니카의 반음조절 레버를 쉴새 없이 조작하고, 들숨과 날숨을 가쁘게 교차해 가며 고난도의 카덴차 부분까지 능란히 소화해 냈다.
그런 정도라면야 한 악기에 통달한 장인이라면 그저 심심파적으로 펼쳐 보일 법한 묘기 수준이 아닌가. 그러나 전제덕의 하모니카 버전 ‘아랑훼즈 협주곡’은 궤를 달리 한다.
세미 클래식이나 팝에서와는 접근 방식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폴 모리아나 레이몽 르페브르 악단이 하듯 그는 귀에 익은 멜로디를 적절히 편곡, 변용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일반적인 ‘경음악’의 수준을 초월, 전혀 결이 다른 음 조직을 구현해 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재즈 하모니카 버전 아랑훼즈가 탄생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어의 1972년도 앨범 ‘깃털만큼 사뿐히(Light As A Feather)’ 중 최대의 히트곡인 ‘스페인’을 하모니카로 재해석한 최초의(적어도 기자가 확인한 바로는) 인물이 된 셈이다.
코리어의 ‘스페인’이 로드리고의 ‘아랑훼즈’를 재즈화한 것이니, 전제덕은 결국 코리어를 통해 로드리고와 한 피를 공유한 셈이다.1940년대를 주름 잡은 불세출의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가 클래식이나 스탠더드 선율을 자기만의 재즈로 재해석했던 것과 비견할 만하다.
“이삼년 전부터 혼자 연습해 오던 것인데, 지난 해 12월께 동료들한테 함께 하자고 제의해 봤더니 모두 찬성하더군요. 다들 좋아해 아이디어가 마구 분출하는 바람에 정말 즐거운 연습이 됐어요. 이후 클럽이나 방송 등에서 간간이 소개해 왔죠.”
주목되는 것은 전제덕이 그 같은 변화를 자신의 음악적 전략으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라틴 음악에 집중하고 싶어요. ‘스페인’을 일주일 만에 완성하면서, 복잡한 리듬을 정복해 가는 과정을 6명 멤버 모두가 참 즐거워 하던 일을 잊을 수 없어요.”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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