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부모들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은 물론이나, 어떻든 그가 느낀 ‘재래식’ 병영생활도 사건의 요인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같은 날 다른 부대에서는 가혹행위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자살사건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올해 초 육군 훈련소에서 중대장이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인 사건은 상기하는 것조차 역겹고 끔찍스럽다.
그런가 하면 철책선을 유유히 통과해 월남해온 북한군을 주민이 신고해 군이 신병을 넘겨받은 기막힌 사건도 발생했다. 그가 버젓이 걸어 들어온 장소는 몇 달 전 철책선 절단사건으로 온 군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바로 그 지점이다. 그 뿐인가. 만취 선장을 태운 배가 아무 제지없이 흘러 해상경계선을 넘고, 억대의 군 전투장비가 유실되는 일이 별일 아니듯 일어난다.
전자의 사건들은 군이 위압적이고 경직된 구(舊) 군사문화를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을, 후자는 시쳇말로 당나라 군대보다도 못한 극도의 군기 해이상태를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전혀 상반되는 두 문화의 공존, 헷갈리지만 이게 지금 우리 군의 솔직한 모습이다. 이 현상을 ‘기강해이’라는 상투적인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기강이란 결과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원인요법 없이 “기강을 바로 세우자”고 아무리 외쳐본들 구두선에 그치거나, 또 다른 무리수나 나오게 마련이다.
이 두 문화의 혼재는 우리 군이 심각한 아노미에 빠져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노미란 알다시피 환경의 변화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해 의식이 현실에서 박리 되는 현상이다.
개인주의적이고 감각적이고 파편적인 문화의 확산,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그에 따라 더욱 깊어진 사회적 소외현상, 거기에다 심하게 얘기하면 자기비하 수준에까지 이른 군 권위의 무참한 붕괴, 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불신 등이 군이 총체적으로 겪고있는 아노미의 원인이다.
이는 참여정부 들어, 또는 이미 김대중 정부 때부터 주적개념이 모호해진 게 원인이라는 등의 일차원적 진단으로 설명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더 크게 보자면 사회발전과 변화 수준에서 국민 개병제가 더 이상 맞지 않게 돼버린 옷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안보상황과 지원병제 전환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감안하면 별다른 대책이 있을 리 없다.
군 지휘관들도 이런 딜레마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처럼 단순히 계급적 권위로 억누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신세대의 의식변화에 맞춘답시고 군대를 민주적 집합체식으로 운영해 명령복종 체계를 허물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말하자면 진퇴양난의 형국에 빠져있는 것이 현재의 군 모습이다.
그러므로 지금 군 문제는 지휘관을 문책하고,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등의 ‘전통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었다. 사회 변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군의 위상과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아노미의 해결책은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납득할만한 가치의 공유를 통해 질서와 규범을 되찾는 것이다.
행여 이 사건으로 군이 더 말랑말랑한, 일반 사회에 더 가까운 군을 만드는 전혀 잘못된 해법을 내놓지 않기를 바란다. 어쨌든 군은 유사시 생명을 걸고 전투를 수행, 국가를 보위해야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최근 1,000기 시대를 맞은 해병대나 해군 UDT/SEAL, 육군 특전사 등의 특수부대 지원자는 수십대 일을 넘어 재수, 삼수 지원자들까지 양산해 내고 있다. 오히려 이런 부대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부대의 병사들은 고된 훈련과 엄격한 규율, 어쩌면 다소 비인격적 대우까지도 감수할 만한 이유를 갖고 있는 의식적 동류집단인 것이다. 군문에 들어서는 젊은이들에게 바로 이 이유를 찾아주는 것,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군 개혁의 시발점이다.
이준희 문화부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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