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현장에는 아직도 피비린내와 화약냄새가 묻어났다. 참극이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내무반 바닥에 흥건한 핏물은 반쯤 응고된 채 그대로였고, 내무반 천정에는 수류탄이 터지면서 흩어진 모포조각과 살점이 산산이 붙어있어 당시의 처참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21일 국방부가 언론에 공개한 중부전선 최전방 경계초소(GP) 총기난사 사고 현장은 사건 당시의 아비규환이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얼룩무늬 페인트로 칠해진 콘크리트의 GP건물은 마치 교도소 건물을 연상케 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한낮인데도 컴컴했다. 흐릿하게 시야가 확보되는 순간 폭 2㎙ 남짓한 통로의 오른쪽에 취사장이 나타났다.
방문이 열린 취사장 입구 바닥에는 핏자국을 중심으로 흰색 페인트로 사람 형체를 그려 놓았다. 김모(22) 일병의 난사로 희생된 취사병 조정웅 상병이 쓰러진 곳이었다. 확인사살까지 당한 조 상병의 피가 한 자리에 고인 채 응고돼 있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내무반은 통로 가운데쯤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희생자 두 명(이태련ㆍ박유철 상병)의 이름표와 함께 응고되지 않은 핏물이 가득해 발길을 옮기기조차 조심스러웠다. 마찬가지로 흰색으로 그려진 희생자의 형체 옆으로 핏물에 잠긴 박유철(22)상병의 인식표가 주인을 잃은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침상 한 가운데 조정웅(22) 상병의 관물대 앞이 김 일병이 수류탄을 던진 자리였다. 침상에 깔린 모포 한군데가 30㎝가량 패인 채 시커멓게 탄 자국이 선명했다. 모포 위에는 박의원(22) 상병이 희생됐다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박 상병은 사고 직후 머리를 벽쪽으로 한 상태에서 엎드린 채 발견됐는데 내장이 모두 쏟아져 손을 담아 수습했다”고 사단 수사과장 강성국 소령은 처참한 광경을 전했다. 수류탄이 터졌는데도 희생자가 적었던 이유에 대해 박 상병이 폭발의 충격을 흡수하는 바람에 피해가 적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박 상병이 조 상병 자리에서 잠들었던 이유는 수사에서 밝힐 대목이라고 강 소령은 덧붙였다. 수류탄이 터진 바로 옆 자리에 김 일병에게 평소 언어폭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진 모 상병의 관물대가 있다.
수류탄이 터진 침상 건너편 침상 한 가운데 또다른 희생자인 김인창(22) 상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핏물을 가득 머금은 모포에는 김 상병의 이름표와 함께 깨진 형광등까지 산산이 흩어져 처참함을 더했다.
GP장 김종명 중위가 희생된 체력단련장에도 바닥 곳곳에 핏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김 중위가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름대로 대응조치를 하려한 기어다닌 증거라고 강 소령이 설명했다. 통로 끝에서 오른 쪽으로 연결된 상황실 벽에는 대여섯 개의 총탄자국이 선명했다.
건물 옥상은 네 귀퉁이가 경계초소로 사고당일 김 일병은 남서쪽 초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옥상 가운데는 흙을 퍼올려 연병장을 겸한 농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교대병력이 임시숙소로 사용하는 군용천막이 차지했다.
육군은 사고GP병력을 예정보다 2주일 앞당겨 철수시키고 교대병력을 투입 시켰지만 사고 현장인 내무반은 조사 목적으로 통제했기 때문에 교대병력은 연병장에 묵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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