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특이한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으레 사전 물밑회담에서 조정이 끝나고, 정상들은 반갑게 덕담을 나누는 행사였다. 그러나 어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회담은 달랐다.
회담 직전까지도 특별히 의제를 설정하는 대신 북핵ㆍ역사 문제를 논의한다는 어렴풋한 틀만 언급됐을 뿐이다. 현안 해결의 기본방향을 잡는 것은 요원했다. 서울의 주일 대사관 주변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반일시위가 하루종일 계속됐다.
그런 상태에서 강한 개성으로 난형난제인 두 정상이 만났다. 그러니 역사문제와 관련, 서로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주장과 논리를 다시 듣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은 열리지 못했고, 연이은 단독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조차 차단됐다. 그나마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면담 결과를 알리고, 북핵 문제에 대한 시각을 교환하고, 6자 회담 개최를 위한 협조를 약속했지만 형식에 그친 느낌이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양국이 물밑조정에 어려움을 겪을 때 이미 예상됐다. 다만 두 정상이 얼굴을 마주하면 감정과 오기가 조금 무디어지고, 어쩌면 그것을 출발점으로 새롭게 화해를 기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기대는 빗나갔지만 어차피 혹시나 하는 것이었으니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양국 대표선수가 한바탕 토론을 치른 셈이니 ‘진의’는 충분히 전달됐고, 더 이상 ‘오해’ 운운은 어렵게 됐다. 서로의 시각차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깊어졌을 수 있다.
더욱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진 두 정상의 만남은 그 자체로 양국 관계의 필연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또 만나지 않을 수 없고, 이제는 울분과 탄식 대신 제대로 준비된 다음 만남을 기약할 때다. 할 말을 다 했으니 남은 일은 할 일을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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