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벽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주민들은 갑작스런 폭발음과 총소리에 잠을 깼다. 마을 주민들은 “폭발음이 3~4번 들리고 총소리는 거의 콩볶는 수준이었다”며 “북한군이 쳐 내려와 교전을 벌이는 줄 알았다”며 당시의 공포감을 전했다.
그러나 이 소리는 전방 철책선을 넘어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경계초소(GP)에서 선임병의 폭력에 시달리던 김모(22)일병이 부대원을 향해 수류탄과 총기를 난사하는 비극적 사건현장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경계근무하던 김일병 중도에 내무반 행
사고가 발생한 XX사단 OOOGP에는 병사 33명 및 소초장 김종명 중위(26ㆍ학군41기)와 포병관측장교, 6월 전역하는 김 중위와 교대할 후임 소초장 이모 중위(25) 등 3명의 간부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의 임무는 400평 안팎인 GP내에서 주간과 야간으로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도발을 저지하는 것으로 야간에는 밤12시를 기준으로 전반근무조와 후반근무조가 돌아간다.
이날 김 일병은 후반근무조로 밤12시에 선임병과 함께 콘크리트 엄폐호(GP본부) 위에 설치된 경계초소에 투입됐다. 사고가 난 GP에서는 엄폐호 위 3개의 초소 가운데 남동쪽 간이초소를 제외한 남서쪽과 북동쪽의 2개 초소만 운용했고 김 일병은 이모(22) 상병과 함께 남서쪽 초소에 투입됐으며 2시45분까지 근무를 서야했다.
근무 종료 15분 전인 2시30분 김 일병은 이 상병에게 후임근무자를 깨워오겠다며 K_2소총은 세워둔 채 내무반으로 내려갔다.
수류탄ㆍ실탄 휴대하고 내무반 진입
내무반으로 들어선 김 일병은 먼저 관물대에 있던 정모(22)상병의 K_1소총을 꺼낸 뒤 화장실로 이동해 휴대한 수류탄의 제1안전핀을 뽑고 25발들이 탄창 하나를 소총에 장착하고 다시 내무반으로 들어가 수류탄을 침상 위에 던졌다.
경계근무 중인 병사를 제외한 25명이 잠자고 있던 내무반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병사들은 다행히 머리를 내무반 양쪽 벽쪽을 향해 잠들었기 때문에 수류탄 폭발로 인한 사망피해는 없었지만 파편에 맞은 병사들의 비명으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김 일병은 이어 상황실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체력단련장에 있던 소초장 김 중위를 향해 총기를 난사했고 상황실에서는 얼굴을 내미는 후임 소초장 이 중위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김 중위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이 중위는 몸을 피해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취사장에 있던 취사병 이건욱 상병도 총격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도중 숨졌다.
탄창 하나를 다 갈긴 김 일병은 탄창을 갈아 끼운 뒤 다시 내무반으로 들어가 우왕좌왕하는 부대원들을 향해 소총을 난사했다. 이 과정에서 6명의 병사가 즉사했고 1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도중 사망했다.
사건 10여분 만에 검거
김 일병은 이어 K_1소총을 든 채 위층 초소로 복귀했다. 함께 근무를 서던 선임병은 “무슨 상황(적 침투)이 발생한 것 같으니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지시했고 김 일병은 순순히 따랐다고 한다.
사상자들로 아수라장이 된 현장은 약 10여분 뒤에 수습이 됐다. 후임 소초장인 이 중위는 GP연병장에 부대원을 모아놓고 범인색출에 나섰고 자신에게 총을 쏜 사람이 군복차림이었던 점에 착안해 김 일병을 포함한 경계근무자 등 5명을 포병관측장교 방에 감금했다.
여기서 김 일병과 함께 근무를 선 이 상병이 김 일병 소총이 초소에 두 정 있었다는 점을 추궁하자 김 일병은 범행일체를 자백하고 체포됐다.
김정곤 기자 kimjk@hk.co.kr
■ GP는 어떤 곳인가/ DMZ內 최전방 감시초소
GP(Guard Post)는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남쪽으로 2㎞ 떨어진 남방한계선 사이에 설치된 최전방 감시초소다. 북한군의 침투나 매복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은 물론, 북한군의 움직임 등을 감시한다. 최전방 사단 수색대가 임무를 수행하며 이곳에 파견된 수색대를 민정경찰이라고 한다.
24시간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적의 동태를 살펴야 하고 특히 북한군 개인화기(소총)의 유효사거리 내에서 근무한 만큼 실제 전장과 같이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다. 또 DMZ 곳곳에 지뢰가 매설돼 있어 사고위험도 높다.
수색대는 GP로 투입된 이후 수개월동안 비무장지대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근무한다. 특히 육안 또는 망원경 등으로 적의 동태를 감시할 수 있는 낮 시간대에 비해 적의 움직임을 파악키 어려운 야간 시간대에 많은 인원이 투입돼 매복, 정찰을 한다. 이 같이 힘든 근무 때문에 일정기간의 근무를 마친 후 부대원 전원에게 휴가를 실시하는 등 순환근무를 하고 있다. 최전방 각 사단은 건강하고 신원이 검증된 장병에 한해서 수색대원으로 선발한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4㎞ 구간인 DMZ는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된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이 지역에 GP를 설치, 적의 침투 및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다만 중화기는 배치 또는 무장하지 않고 개인화기만 휴대한다.
GOP(General Out Post)는 남방한계선인 철책선을 지키는 일반전초다. 통상 부대가 야영지나 전투진지에 있을 때 주력부대가 적의 기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주력부대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두고 배치되는 소대급 규모의 부대다.
OP(Observation Post)는 관측소로 아군 및 적군 부대를 관측할 수 있으며 포와 화기 사격을 지휘ㆍ조절할 수 있는 남방한계선 이남에 위치한다. 비행기나 기타 방법에 의하여 탐지되지 않은 목표물의 접근을 탐지하는 곳이다.
송두영 기자 dysong@hk.co.kr
■ 장석규 정훈공보실장 문답/ "고참에 언어폭력 당해 감정격화"
장석규 육군 정훈공보실장(준장)은 19일 내무반 총기난사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초소 근무를 서던 김 일병이 후임근무자를 깨우기 위해 내무반으로 들어와 언어폭력을 일삼은 선임병 얼굴을 보자 화가 나서 갖고 있던 수류탄 1발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장 실장과의 일문일답.
-평소 어떤 언어폭력을 당했나. 구타 여부는.
“현재까지 구타 등 폭력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선임병들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해 감정이 격해졌다.”
-총기를 난사한 김 일병이 평소에도 문제를 일으켰나.
“김 일병의 성격결함이나 정신병적 문제 등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내무반에서 다른 사람의 총기를 사용한 이유는.
“자신의 총은 소초에 놓고 들어왔다. 최전방 부대여서 (즉각 사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시건장치 없이 내무반에 총기를 보관하고 있어 이를 사용했다.”
-사건 발생 후 어떻게 김 일병을 검거했나.
“부대원들에 의해 검거됐다. 사고 발생 10여분이 지나 후임 소초장이 소초원들을 연병장에 집합시켜, 사고자의 탄창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김 일병을 추궁해, 범행을 자백 받고 검거했다.”
-김 일병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다른 교전은 없었나.
“없었다.”
-사고 발생 후 소초원을 연병장에 집합시킨 시간은.
“사고 발생 후 10여분 지나서 였다.”
-사고 발생 이후 김일병의 소재는.
“구체적으로 확인 되지 않았다.”
-상부에 보고한 시각은.
“육군본부에 사고발생 10여분 후에 보고됐다.”
-사건발생 이후 북측의 반응은 없나.
“현재까지 확인된 별다른 동향은 없다.”
■ 주요 軍총기난사 사건
군 장병에 의한 총기 난사사고는 2000년 이후에는 뜸했지만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종종 발생했다. 1996년에는 4건의 총기 난사사고로 병사 4명이 숨지고 민간인 1명을 포함, 2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다음은 1980년대 이후 군 장병에 의한 주요 총기난사 사고 일지
▦2005.6.19 = 경기 연천군 육군 모부대 전방초소 내무반에서 김모 일병, 수류탄 1발 던지고 소총 난사, 8명 사망, 2명 중상.
▦1996.12.22 = 강원 강릉시 남포동 포남 주공아파트 인근 지하철물점 앞길에서 육군 모 부대 김모 대위가 시민과 시비를 벌이다 K1 소총을 난사, 민간인 최모씨가 무릎 및 가슴에 총상.
▦1996.10.1 = 경기 화천군 육군 모 부대 김모 상병, 중대 행정반에 총기난사, 동료병사 3명 사망, 1명 중상.
▦1996.9.22 = 육군 모 부대 김모 일병, 부대내 식당에서 수류탄 던져 동료 병사 9명 중경상.
▦1996.9.22 = 강원 양구군 동면 육군 모부대 김모 이병, 부대내 취사장 및내무반에 수류탄 2발 투척하고 소총 20여발 난사, 9명 중경상.
▦1994.10.31 = 경기 양주군 황적면 육군 모부대 사격장에서 문모 일병이 통제관들을 향해 K2소총 난사, 중대장 김모 대위와 소대장 황모 중위 등 2명 사망, 6∼7명 중경상.
▦1993.4.19 = 서울 종로구 명륜, 혜화동 일대에서 육군 모부대 소속 탈영병 임모 일병이 총기를 난사하며 난동, 민간인 부상자 발생.
▦1984.6.26 = 강원 동해안 육군 모부대서 총기 발사, 수류탄 3발 투척해 12명사망, 11명 중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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