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옥스퍼드대는 다르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사라진 문명을 옥스퍼드대가 디지털로 되살려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인류 최초의 문자라고 하는 수메르 설형(楔形ㆍ쐐기 모양)문자로 적은 문헌들을 디지털화해 인터넷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웹사이트(http://etcsl.orinst.ox.ac.uk)가 마침내 완성됐다. 이에 대한 학계의 찬사이다.
옥스퍼드대 동양학부 교수 등 여러 관계자들이 무려 9년 동안 노력을 쏟아 부어 최근 완성한 이 프로젝트의 한가운데에는 존 베인즈 교수가 있다. 원래는 이집트학 전공자인데 주변 오리엔트의 문자와 문화에 밝아 이 프로젝트를 사실상 책임져 왔다.
세인의 관심을 별로 끌을 이유가 없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독일 시사 주간 ‘슈피겔’ 20일자는 최소한의 예의라 할 만한 분량의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상고(上古) 시대 텍스트 인터넷에 뜨다’. 베인즈 교수는 이 잡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구축한 웹사이트는 인터넷의 잠재력을, 즉 여러 새로운 작업 방식을 가능케 하고 좀더 많은 사람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주석이나 그림을 포함해 일반 출판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고대 문헌까지 처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세계 여러 나라 학자들이 함께 읽고 토론하고, 더 많은 현대인이 고대 언어와 문화를 만나고 탐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지만 누구도 해야 할 의무는 없는 작업을 해 냈다는 자부심이 잔뜩 묻어나는 이야기다.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생활한 수메르인은 후손이라고 할 만한 존재를 남기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잊혀져 갔다. 최근 투탕카멘 왕의 사인 분석 작업에서 보듯이 이집트학이나 고대 중국학 등은 후손이 뚜렷하기 때문에 돌아보는 이가 적지 않다. 더구나 수메르 문화는 유물이라야 철필로 긁어 새긴 글씨가 적힌 점토판, 토기, 인장 등이 대부분이고 금은보화라 할 만한 것은 거의 없어 고고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베인즈 교수팀의 작업은 점토판 수집부터 시작했다. 상당 분량을 모아 2002년부터 번역에 들어갔다. 신화와 전설, 찬가(讚歌), 속담 등 3만5,000행이나 되는 기록을 일일이 번역했다. 이중에는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유명한, 영웅 길가메쉬왕의 모험과 사랑, 죽음을 그린 ‘길가메쉬 서사시’도 포함돼 있다.
웹사이트에는 원문과 번역된 문장이 나란히 놓여 있다. 뾰족뾰족 기하학적 느낌을 주는 글자 하나 하나에 문법 설명을 붙였고 어휘 활용 사례도 자세히 밝혔다. 물론 오른쪽에는 영어로 의미를 번역해 놓았다. 예를 들어 동사 ‘가다’를 검색하면 ‘나는 간다’ ‘그는 가고 있다’ ‘너는 갔다’ 등의 변형 용례를 원문과 함께 찾아볼 수 있다. 문장을 구성하는 개별 단어의 뜻을 알고 싶어 하는 네티즌을 위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온라인 수메르어 사전 웹사이트와 링크시켜 놓았다.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2000년까지 유지되다가 사라졌으며 19세기 중엽부터 유럽 고고학자들이 점토판을 발굴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수메르 문헌 대부분이 해독됐지만 지금도 현지에서 각종 점토판, 인장 등이 발굴되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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