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은 동양철학으로 분류된다. 좁게는 중국철학이다. 그러나 이것을 공부하기 위해서 나는 상당한 우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1960년대 한국에서 철학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서양철학을 전공하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서양철학을 주로 수강하면서 중국철학을 힘겹게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대만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 유학을 갔으나. 그 곳의 사정도 남한의 형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장개석정권의 극단적 독재는 ‘철학개론’ 대신에 ‘논리학’을 교양필수로 하였을 정도였다.
그 뒤에 나는 독일로 유학을 가서 서양학문 속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또 한번의 학문적 시련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60년대에 한국과 대만에서 주로 노장(老莊)의 형이상학, 하이데거의 존재의 철학 등 주로 이상적 관념철학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70년대 유럽, 특히 독일 프랑스 등에는 반제국주의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급기야 유엔에 진입한 70년대의 중국(중공)은 스스로 제3세계에 속했음을 선언하며 제3세계국가들과 연대하는 반제투쟁에 앞장을 섰다. 그 결과 유럽에서 모택동사상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 독일대학생들이 외치는 3M(마르크스 마오쩌둥 마르쿠제)의 구호와 반제투쟁의 외침은 그때까지 ‘반공’교육을 받아왔던 나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지적 충격이었다. 나는 더 이상 관념철학적인 연구주제에 연연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헤겔, 마르크스, 마오 등의 철학서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유럽의 비판적인 지성들의 환영과 지지의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중국에서 지난 20세기에 전개된 사회주의 혁명을 더 이상 단순히 중국의 문제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중국현대의 혁명을 지난 2000년 이상 동아시아에 지속되어왔던 유교적 세계관과 그 체제로부터의 혁명적 대혁신으로 받아들였다.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철학을 그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철학적 체험 없이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없듯이, 나는 동아시아에서 중국현대혁명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동아시아의 현대화와 미래의 발전을 제대로 얘기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전환된 실천중심의 철학적 관심에서 독일에서 ‘반(反)박정희독재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중국의 20세기 사회적 대전환의 철학적 의미를 밝히기 위하여 우선 유가사상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박사학위논문주제로 설정하고 장기간에 걸친 실천적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나는 박정희 사후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구의 결과는 1986년 ‘중국사회사상사 - 유교사상, 유교적 사회와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라는 책으로 나타났다.
이 책은 당시 한국에서 역사, 문학, 철학 등등 인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그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에게 정말 신나게 팔려나갔다. 소설이 아닌 전문 학술서적이 그 뒤 무려 16판이나 지속적으로 출판되었다.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중국의 역사를 해석하기를 거부하고, 지난 2000년간 지속된 중국의 관료-지주중심의 사회체제의 사회적 특성을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 속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한 이 책의 성과는 지금 중국의 지성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읽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나는 중국철학을 하면서 서양학을 하는 이들에게도 이해될 수 있는 동양의 학문, 특히 철학의 지평을 제시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공부를 한다. 만약 왜 그런 공부를 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현대 그리고 앞으로 세계화시대에서 아무리 우리의 생활이 서양의 문화와 그것에 기반을 둔 과학기술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할지라도 한국인, 또는 동아시아인의 정체성은 자기의 문화적 역사적 전통과 무관하게 설명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답할 것이다.
그렇다고 가부장적 인륜가치가 지배적이었던 과거 우리전통을 그대로 옹호하고 재현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 잔재는 오히려 과감하게 폐기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 간의, 그리고 인간과 사물(자연) 간의 관계를 오직 ‘최소경비’에 ‘최대이윤’이라는 척도에 따라서 효과적인 지배와 통제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인간 독단주의나 도구제일주의는 결국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와 후세 인간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서양의 근대가 주도해 온 지나치게 도구중심적이며, 인간에 의한 타자(즉 이웃하는 인간이나 자연) 지배적인 일방적 관계를 다시 반성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우리의 전통 속에 살아있는 인간과 인간 간의 차별보다는 궁극적으로 ‘화합’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간의 ‘생명적 소통’을 말하는 동양전통의 생명의 철학에 대하여 이제 좀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접근하는 일이 요청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지난 20세기에 제1ㆍ2차 세계대전, 그리?냉전시대의 한국전쟁, 60년대 베트남전쟁과 90년대의 중동전쟁, 그리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발발한 2001년의 9ㆍ11사태 등등을 보면서 서양의 근대가 주도한 지나친 타자지배적인 서양문명의 폭력성에 우리 인류는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서양문화에 회의적인 서양의 일부 지성들에게 그와 다른 동양문화가 색다르게 보이고 있다. 평화란 자기를 버리는 데서 비롯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동양의 불교의 가르침에서 시사 받으면서 1차 대전 후에 헤르만 헤세는 그의 문학작품 속에서 동양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데거 또한 인간(주체)의 타자(자연)지배적인 과학기술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접근을 한다. 그는 존재자들을 존재하게끔 하는 근원적 ‘존재’(Sein)는 오히려 자신을 ‘비움’으로써 존재자들을 수용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주체)에 의한 자연(대상)의 지배가 아니라 “사물에의 내맡김”, 말하자면 ‘스스로 그렇게 내버려둠’(自然)을 말하면서, 불교의 ‘공(空)’이나 노자의 ‘무(無)’의 가르침에 새롭게 접근하는 ‘자기 비움’의 철학을 권한다. 이렇게 동양의 철학적 메시지는 서양의 철학자들에게 다시 읽혀지고 그것이 현대의 지성사에 새롭게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동양 전통’ 철학에 대한 재해석과 재창조가 물론 서양의 문화와 기술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동양의 그것에 대한 조건 없는 찬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과학은 이제 서로 배타적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서양에서 건너온 개인주의와 인권사상, 그리고 서양의 자연과학적 방법에서 발전되어 나오는 과학기술, 그것들을 다 부정해 버리고 난다면, 우리는 앞으로 현대의 문명 속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형태, 우리의 멋, 우리의 소리가락, 우리의 인간관계와 가치관 등등을 다 제거해버리고 남은 보편적 인간이란 생명 없는 ‘박제인간’에 불과하다.
생명 있는 인간은 기계적 제조품과 같은 동일성에서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다양한 생명성의 발현에서 그 생명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똑같은 소나무라도 지형이나 기후에 따라서 생긴 모양이나 맵시는 결코 한 가지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본질적인 요소인 생명적 특질은 그것이 근거하는 언어, 문화, 관습과 분리되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동양철학은 지나간 우리의 옛날이야기를 하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문화의 본질적 생명성을 찾아서 보여주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나치게 도구의존적인 현대인들에게 ‘자기 삶의 진실성’을 일깨워주는 일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아직도 동양철학에 계속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부는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문을 통하여 동양의 고전을 읽는 동안 서양의 문화와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문화 안에 갇힌 자기 폐쇄적, 또는 ‘국수적’ 입장으로 이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시대에 우리는 특히 우리와 다른 문화들과 공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세계화시대의 다양한 문화들과의 공존은 또한 그들에 대한 포용적인 이해와 함께 자기의 독특성과 생명성을 의미 있게 살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것이 오늘도 동양철학을 하는 나의 공부 과제들이다. 이런 과제들이 내 앞에 산재하는 한, 나는 그저 또 책을 뒤적이며 공부를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 송영배 교수는…
송영배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중국의 역사변동을 유교적 관료주의와 토지의 사유에 초점을 맞추고 새롭게 분석, 외국에서 더욱 평가받는 학자이다. 중국의 허베이(河北)대학 출판부는 ‘문명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세계 10대 석학의 저서를 번역소개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는데 그 가운데 송 교수의 ‘동서 철학의 교섭과 동서양 사유방식의 차이’가 선정되어 올해내로 출간될 예정이다. 그의 ‘중국사회사상사’도 2003년 11월에 중국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초판 5,000부가 발행되었다.
1944년 경기 수원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철도고에 들어갔으나 부패한 자유당 때문에 철도청에 취직할 수가 없어 대학(서울대 철학과)에 갔다. 국립대만대에서 석사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의 반독재운동 때문에 82년에야 귀국하였으며 한신대 교수를 거쳐 88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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