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통해 전달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6자 회담 복귀 가능성 언급에 대해 미국 정부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차분함을 넘어 귀담아 들을 게 별로 없다는 듯한 태도가 엿보인다.
17일 정 장관의 기자회견 직후 애덤 어럴리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회담 날짜를 정하기 전까지 회담 날짜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무부의 한반도 문제 담당 실무 당국자는 이후 한국 워싱턴 특파원들을 만나 “6자 회담은 열려야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냉담한 반응의 근저에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웅장한 수사는 또 다른 지연책일 수 있다는 게 미 정부 관리들의 생각이다.
미 정부는 내심 김 위원장과 정 장관의 면담을 중요한 상황 변화로 여기고 있기는 하다. 국무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남북대화 채널을 통해 입장을 밝힌 것을 “매우 중요한 상황 전개”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은 김 위원장이 복귀의 조건을 내건 것이 마땅치 않다. 특히 복귀의 조건으로 내건 ‘미국의 북한 인정과 존중’은 북한이 지금까지 되풀이 해온 대북 적대 정책 포기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게 미국의 생각이다.
미 정부 관리들은 “북한은 조건 없이 회담에 나와야 한다”고 예전의 톤을 퉁명스럽게 내뱉음으로써 북한에 새롭게 더해 줄 ‘인정과 존중’의 표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신중한 태도에서 회담이 실제 열릴 가능성에 대비한 실리적 측면도 읽을 수 있다. 미 정부 관리들은 요즘 부쩍 6자 회담의 재개보다도 회담에서의 실질적 진전을 강조하고 있다. 어럴리 대변인은 “우리가 북한의 회담 복귀보다 더 기대하는 것은 미국의 제안에 대해 핵 프로그램을 종결하기 위한 논의에 진지하고 실질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내놓은 미국안을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탄력적으로 수용할지를 검토하겠지만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부드러워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국무부 당국자도 “협상은 협상”이라며 “현재는 협상이 안되고 있으므로 유연성을 보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은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의 핵 폐기 의사를 확인한 후 선물의 크기를 결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점에서 지난 주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한미간 고위급 접촉에서 여전히 공은 북한 편에 있다는 미국의 완고한 입장에 얼마나 변화를 줄 수 있을 지가 향후 6자 회담 재개 분위기를 띄우는 데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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