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도망자의 생활을 포기하고 5년여 만에 귀국한 것은 이해관계자 뿐 아니라 전국민의 관심사였다. 그런 만큼 뉴스 매체들에겐 그의 모습이 놓칠 수 없는 취재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난 14일 아침 김씨가 귀국하는 인천공항의 현장 TV중계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남보다 먼저 사진을 찍고 질문을 하려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고, 이 혼란으로부터 김 회장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뒤엉켜 벌이는 실랑이로 정작 취재 대상인 김 회장의 온전한 모습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출발지에서도 보도진의 취재경쟁으로 비행기안은 아수라장이었다.
같은 날 아침에 CNN은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아동 성추행 재판 무죄평결을 받고 캘리포니아 법정을 나서는 광경을 방영했다. 한국에서 김우중 회장 귀국이 관심거리가 된 이상으로 미국의 화제였다.
그러나 화면에는 주변의 방해를 거의 받지 않고 법정밖으로 걸어 나오는 마이클 잭슨과 그의 수행원들이 모습이 비쳤다. 사진 기자들이 포토라인을 지킨 결과다. 서울과 미국에서 벌어진 취재경쟁이 매우 대조를 이뤘다.
거의 모든 인간활동에서 경쟁은 발전의 활력소이다. 언론사의 취재경쟁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경쟁자보다 먼저 사건의 주인공을 만나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아이디어를 짜내며 특종을 쫓는다.
이런 취재 경쟁의 덕택으로 신문 독자나 TV시청자는 보다 생생한 기사와 사진을 보게 되고, 때로는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권력의 비리나 범죄의 진상을 알게 된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도 제보자의 도움이 컸지만 기본적으로 이와 같이 특종을 쫓는 취재기자의 경쟁심리에 의해 파헤쳐진 것이다.
언론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은 김 회장 귀국 현장의 취재광경을 지켜보며 신세한탄을 했을 것이다. 공항에서 밤을 꼬박 샌 후에도 비행기 도착을 알리자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꽤나 몸싸움을 벌였을 기자들의 모습이 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나 시청자들은 왜 기자들이 그렇게 법석을 치면서 정작 김 회장의 모습을 못 보게 하는지 불만이 컸을 것이다. 독자나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를 최대한 한다는 것이 과열경쟁으로 인해 거꾸로 최악의 서비스가 된 셈이다.
이런 광경을 볼 때 마다 예전에 미국 LA 골프장에서 일어났던, 어리석은 한국인들의 실화를 떠올리게 된다. LA 시내에 있는 한 퍼블릭코스는 값싸고 왕래가 편해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퍼블릭코스는 선착순이다. 새벽에 나와 줄을 서서 등록을 해야 두 세시간 후에 티오프가 가능하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못 참았다.
누군가 골프장 커피숍 여종업원에게 20달러를 주고 차례를 당겨주도록 청탁했다. 여종업원은 스타터(티오프 관리인)에게 돈을 주고 차례를 바꿔줬다. 그 한국인은 “미국인들도 뇌물엔 별수 없더라”며 경험담을 자랑했다.
날이 갈수록 20달러를 든 한인들이 늘어났다. 그러자 스타터는 돈은 받고 아주 공정하게 앞에 온 한인부터 차례를 주었다. 물론 뇌물을 안 준 서양인들도 줄 선 차례대로 티오프하게 했다. 결국 한국인들의 잔머리 굴리기는 아무 효과없이 집단으로 20달러씩을 날리는 재앙으로 끝났다.
좋은 서비스를 위한 경쟁이 역으로 부실한 서비스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음미해볼 만한 일화라고 본다. 피를 말리며 현장을 뛰는 취재기자들, 특히 카메라맨들이 뉴스메이커의 동선을 잘 고려하여 포토라인을 설정하고 이를 엄격히 지킨다면 뉴스영상은 더욱 좋아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취재관행도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어서 쉽게 고치기 어렵다. 그러나 수많은 독자나 시청자에게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면 현장기자의 경쟁 방법도 변화를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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