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7일 평양 대동강 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2시간30분 동안 단독 면담했다.
정 장관은 이날 저녁 서울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통해 김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를 토대로 정 장관과 김 위원장의 주제별 대화내용을 재구성했다.
■ 북핵 문제
김정일 위원장(이하 김): 한반도 비핵화는 돌아가신 김일성 주석의 유훈입니다.
1991년 남북간에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핵무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6자 회담을 포기한 적도, 거부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미국이 우리를 업수이(가볍게) 보기 때문에 자위적 차원에서 맞섰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상대를 존중하고 이것이 확고하다면 7월 중에라도 6자 회담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미국과 조금 더 협의해야 합니다. 이는 미국의 입장이 확고하지 못한 것 같고 미국이 시간을 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하 정): 지난 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핵 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북측이 핵 문제를 포기할 경우 북미간에 ‘보다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핵 문제가 해결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할 것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도 모두 수용해서 철저하게 검증을 받을 용의가 있습니다. 와서 보세요. 하나도 남길 게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공개해도 좋습니다.
정: 북이 원하는 체제 안전보장문제는 북미간 양자 안전보장보다 다자 틀의 안전보장 형식이 보다 굳고 실효성이 있을 것입니다.
김: 정 특사가 말씀하신 다자 안전보장의 유효성 설명이 일리가 있습니다. 앞으로 신중히 검토하겠습니다.
정: 6자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6자 회담만을 거듭해서는 안됩니다. 핵 문제 타결을 위해 정부는 중대한 제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에게 중대 제안을 설명했으나 비공개)
김: 신중히 연구해서 답을 주겠습니다.
■ 북미관계
정: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해 경칭인 ‘미스터’를 붙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도 미스터라는 경칭을 거듭 사용했습니다. 최고 지도자간 상호 인정과 존중이 중요하니 부시 대통령을 평가해주면 좋겠습니다.
김: (웃으며) 그럼 부시 대통령 각하라고 할까요.
저는 부시 대통령 각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근거가 없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부시 대통령은 대화하기 좋은 남자다, 대화하면 흥미를 가질 것”이라고 말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같은 취지로 이야기했습니다. 과거 클린턴 정부 때부터 미국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우호적으로 대하려고 했습니다. 협상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이런 생각은 공개적으로 밝혀도 좋습니다.
■ 남북관계
김: 이번 6ㆍ15 북남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는 성과가 참 많았습니다.
서울에서 준비하는 8ㆍ15 북남공동행사에는 비중 있는 인사들로 우리 대표단을 꾸려 보내겠습니다. 8ㆍ15 행사도 6ㆍ15 행사에 이어 북남 관계를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 지난 1년간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기 위해 8ㆍ15를 계기로 상봉행사를 재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흔쾌히)그럽시다.
정: 이산가족이 12만 명인데 매년 5,000여명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지금처럼 만나는 것으로는 10~20년이 걸릴 것입니다. 정보화 시대인데 화상 상봉을 이용하면 서로 더 자주 안부를 주고 받는 등 이산가족의 한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매우 흥미롭고 흥분되는 제안입니다. 정보화시대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지금부터 준비해 8ㆍ15 때 첫 화상 상봉을 시작할 수 있도록 추진해봅시다. 북남이 경쟁적으로 준비해서 화상상봉이 이뤄지도록 노력합시다.
정: 다음 주에 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그 동안 장관급 회담은 5분 정도 덕담을 한 뒤 말씨름 등으로 소모적 회담이 돼 왔습니다. 회담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김: 앞으로 회담 문화를 적극적으로 개선해서 실질적 북남 협력 방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합시다.
정: 지난해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리고 남쪽에서는 실질적인 화해 협력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빨리 재개해야 할 것입니다.
김: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하면 정 장관이 얘기한 군사적 긴장완화, 특히 서해에서 평화정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육지에서는 개성공단도 만들고 서로 오가는데 바다에서 총질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정: 수산회담을 열어 바다에서 남북이 공동어로를 열면 긴장이 아니라 이익을 낚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간 서해 직항로의 경우 서해상을 거쳐 ‘ㄷ’자로 오기 때문에 50분 정도 걸립니다.
김: 말도 많은 서해인데 평양에서 서울로 직항로로 오는 방안, 육로 상공으로 오는 방안을 협의해서 실천합시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 鄭통일 일문일답/ "즉석 결단·지시, 김정일 시원한 지도자"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17일 밤 서울 삼청동의 남북회담 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오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단독 면담에서 나눈 대화를 자세히 소개했다.
정 장관은 “2시간 30분 동안 정치와 경제, 군사, 인도적 문제, 특히 핵 문제에 대해 폭 넓고 깊이 있게 대화했다”면서 “매우 진지하고 솔직했으며, 따뜻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정 장관은 브리핑을 마치면서 “김 위원장은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한 안부 말씀과 함께 ‘좋은 계절에 초청하겠다’는 말씀을 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늘 오찬 때 북측 배석 인사는.
“김 위원장 외에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양건 국방위 참사가 배석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상태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가 유효하다”고 언급했는데.
“김 위원장은 ‘핵을 가질 이유가 없으며, 체제 안전 보장이 관철되면 핵을 한 개도 가질 이유가 없이 다 내놓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포함해 다 와서 보도록 할 것이며, 핵 보유가 목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답방을 언급했나.
“내가 정상회담 문제를 꺼냈고,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적절한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는 무슨 내용이었나.
“핵 문제를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념과 철학,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에 특별한 안부 인사를 전할 것을 거듭 요청했고, 한미정상회담을 비롯해 여러가지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지난해 7월 이후 남북관계가 중단된 요인으로 작용한 탈북자 대량 입국 등에 대한 오해는 풀렸나. 또 김 위원장이 참여정부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부정적 사안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었다. 김 위원장은 ‘참여정부가 남북 화해협력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다만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정세가 나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6자 회담과 관련해 북한과 미국 간의 협의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나.
“북미 사이의 협의를 통해 북측 입장을 전달하고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안다. 이 자리에서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 면담 이모저모/ 150분 깜짝 단독면담…90분간 核논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전격 면담하면서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된 6ㆍ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통일대축전 참가의 대미를 장식했다.
◆ 김 위원장과의 면담 및 오찬
통일대축전 마지막 날 이뤄진 면담은 정 장관이 김 위원장을 예방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정 장관은 오전 10시38분 수행원 1명과 함께 북측의 안내로 검은색 벤츠 리무진을 타고 출발해, 오전 11시 면담 장소인 대동강 영빈관에 도착했다. 정 장관은 단독 면담에서 “북핵 문제를 풀어서 남북 모두 평화롭게 잘 살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김 위원장은 긍정적으로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 면담은 오후 1시 30분까지 2시간 30분 동안 이뤄져 1시간 30분 정도는 북핵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졌고 나머지 1시간 정도는 정치, 경제, 군사, 이산가족 등 광범위한 분야가 논의됐다.
단독면담에 이은 오찬에는 김 위원장이 “과거에 만났던 지인들을 만나고 싶다”며 임동원ㆍ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최학래 한겨레신문 고문, 김보현 전 국가정보원 3차장 등을 초청해 정 장관과 함께 참석했다. 오찬은 3시 50분까지 2시간 20분동안 진행됐다.
정 장관이 당초 오후 2~3시쯤 돌아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후 4시가 되도록 오지 않자 “얘기가 깊게 진행된다는 의미”라는 관측이 나왔다. 정 장관 일행은 면담을 마치고 오후 4시8분에 숙소로 돌아왔다. 정 장관은 “좋은 대화 많이 나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밝은 표정으로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 면담 성사까지
북측이 면담을 통보해온 것은 전날 밤. 우리측이 줄기차게 정 장관과 김 위원장의 면담을 요구한 데 대한 답이었다. 특히 전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정 장관은 노 대통령의 진솔한 뜻을 전했고 이것이 김 위원장을 움직인 것으로 전해졌다.
면담이 더욱 극적으로 비쳐진 것은 오전까지도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 정부 당국자는 “전날 밤 면담을 갖기로 합의했지만, 시간과 장소를 북측이 추후 통보키로 해서 대표단내에서도 몇 사람만이 알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 언론은 정 장관과 김 위원장의 만남이 사실상 불발된 것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된 것은 이날 오전 8시께 백화원 초대소 정문에 검색대가 설치된 것이 목격되면서부터.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전날 송별 만찬을 베풀었던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예방 가능성이 제기된 정도였고, 정 장관도 백화원 안에 있는 인공호수 주변에서 고문단으로 함께 방북한 최상룡 고려대 교수와 조깅을 하고 있었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오전 8시 25분께. 정 장관은 수행비서로부터 긴급 보고를 받고 조깅을 중단한 채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고, 도중에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 비서와 현관에서 30초 간 얘기를 나눴다. 정부 관계자는 “정 장관이 이 때 시간과 장소를 통보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색대 주변에는 권총을 소지한 북측 요원들이 10명으로 늘어나는 등 주변 경계도 삼엄해졌다. 북측이 정 장관 방 앞 복도에서 대기중이던 남측 취재진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구해 잠시 실랑이가 벌이지기도 했다. 이어 오전 9시 15분께 김홍재 통일부 홍보관리관이 백화원 3층 프레스센터로 찾아와 면담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면담 소식이 전해지자 통일부 당국자들은 “남북 관계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라며 한껏 고양된 모습이었다. 이날 낮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남북회담 사무국을 다녀가는 등 당국자들의 움직임도 긴박하게 돌아갔다.
◆ 대표단 도착 및 청와대 보고
정부 대표단은 정 장관이 도착한 뒤 곧 이어 순안공항으로 이동, 오후 5시께 대한항공 전세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했다. 정 장관은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청와대를 방문해 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보고했다. 정 장관은 대통령 보고 후 삼청동 남북회담 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위원장과의 면담내용을 발표했다.
한편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민간대표단은 17일 오후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KE816편으로 인천 공항으로 돌아왔다.
평양=공동취재단
■ 북핵·남북관계 전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들은 2년 이상 냉각돼온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북핵 6자회담을 정상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 위원장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제약해온 북핵 문제에서 앞으로 한걸음 나왔다. 김 위원장의 ‘7월 중 6자회담 용의’ 표명은 북한체제 특성상 7월 복귀를 기정 사실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6자 회담이 1년간 공전돼 위기가 예견되는 상황이 걷힐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부시 미 대통령에게 깍듯이 예우한 것도 북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발언만으로 북미간 해법의 단초가 마련됐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김 위원장은 핵 보유 이유가 없지만 미국의 위협으로 인해 핵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으며 북한의 이런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전히 북미간 인식차는 크다.
또 핵 동결과 폐기 수준을 밟을 때마다 미국이 단계별로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밝혀야 한다는 북측의 입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에도 진전을 낙관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핵 문제 해결시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겠다는 발언은 아직은 먼 훗날의 얘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북측이 핵 문제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역할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6자회담 복귀의사를 남측 통일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김 위원장이 북핵 문제에서의 남측 역할을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 더욱이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중국의 노력이 집중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 관계는 상당한 속도와 폭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북핵 돌파를 시도하면서 남북관계 진전을 함께 중시하는 태도를 내비쳤다. 장관급 회담 등 기존 대화채널이 정상 가동되고, 남북정상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비선 채널도 복원되면서 남북관계는 당분간 탄력을 받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간 남북간 의제로 논의되지 못했던 북핵 문제와 군사적 긴장완화 분야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이뤄질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 전문가 평가/ "한반도 평화 진전" "北변화 기대엔 미흡"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7일 면담결과에 대한 국내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큰 진전을 이루었다”와 “새로운 게 별로 없다”로 엇갈렸다.
전문가들은 또 김 위원장이 6자회담 복귀가능 시기(7월)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데 의미를 두면서도, 여전히 조건을 단 점을 들어 섣부른 낙관을 경계했다.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김 위원장의 북핵 문제에 관한 언급은 북한은 핵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데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은 조건이 맞으면 핵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유효하다는 말은 한반도 비핵화가 최종목표라는 것으로, 그 동안 북한이 누차 강조해 왔던 내용이다. 완전히 새로운 태도변화로 보기는 어렵고, 기존의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7월이라는 시기를 언급한 것은 6자회담 복귀 목표시점을 정해 놓고 복귀 여건 성숙을 위한 미국의 행동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무엇보다 북한이 전반적 위기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고, 6자회담 재개쪽으로 큰 틀의 방향을 잡았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과 장성급 회담 재개 논의 등은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특히 장성급 회담 재개는 앞으로 초보적 수준에서의 긴장완화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원상회복이라는 의미와 함께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같다.
◆ 김영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
6자회담과 북핵 문제 등 그 동안 막혔던 것을 뚫었다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미흡한 느낌이다.
6자회담 복귀는 김 위원장이 직접 용의를 표시했다는 점이 소득이랄 수 있다.
그러나 복귀에 조건을 단 것은 북핵 문제가 남북간의 사안이 아니고 북미간 사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북미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다면 6자회담도 막힐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또 북핵 문제에 있어 남한은 균형자가 아니라 제한적 역할에 그친다는 뜻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남측에 이를 개선해 달라고 주문할 것이다.이 경우 한미관계는 더 부담스러워지고, 남한에선 반미감정이 고조될 수 있다.
남북관계는 올해 북측이 조국해방 60주년 행사를 계속 준비하고 있는 만큼 연말까지는 계속 진전될 전망이다. 이산가족의 금강산 상봉은 지난번 차관급 회담 때 비료제공에 대한 보답 성격이 짙다.
장성급 회담 재개 문제도 구체성이 부족해 진전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8ㆍ15 행사에 북측 인사 파견 역시 김 위원장이 직접 오지 않고, 6ㆍ15행사의 답방차원에 머물러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김 위원장이 7월중 6자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은 상당히 전향적이다.
물론 미국과 더 협의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한국을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김 위원장의 생각이 전달됐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7월이라는 구체적인 시기를 지목한 것도 그 이전에 미국과의 접촉을 희망하는 뜻을 남쪽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유효하다고 강조한 현재의 북핵 관련 구도는 미국과의 협상이 중심 축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본다.
기존의 입장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의 입을 통해 한국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 상당히 주목해서 들어야 할 대목이다.
남북관계 측면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이어가고 장성급 회담 재개 논의를 한다는 것은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좀 더 발전 심화 시키겠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특히 장성급 회담 재개는 큰 의미를 가진다.
북한은 장관급 회담에서 핵 문제를 분리해 장성급 회담에서 거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관급 회담에서 핵 문제 제기는 다른 이슈들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 이삼성 한림대 정외과 교수
김 위원장의 발언은 긍정적이다.
북한은 핵을 해체 또는 포기하는 작업과 동시에 미국이 북미간 관계를 정상화하고 체제 안전보장을 구체적으로 협의할 준비가 돼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의를 전제로 7월 중 6자회담 복귀를 언급한 것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지킬 의지가 확실히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미국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로 북미관계 정상화, 체제안전 보장, 경제제재 해제 등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지를 묻는 측면이 있다.
즉, 김 위원장 발언은 미국이 체제보장 조치를 성의 있게 한다면 북한이 ?무기를 해체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이번 발언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에 제시된 남북관계 정상화 조치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참여정부가 나름대로 노력해 온 것을 북한이 인정한 결과로 해석된다.
남북간 신뢰를 기초로 상호 관계를 발전시키고, 그러면서 미국을 포함한 다자간 평화협정 체제의 실현 가능성을 기대하는 차원에서 남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는 의미도 담겨 있는 듯하다.
정리=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 김정일, 7명 오찬 초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정동영(鄭東泳)통일부 장관과 단독면담을 마친 뒤 과거 면담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인사들과 오찬을 함께해 눈길을 끈다.
특히 김 위원장은 "과거에 만났던 지인들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함에 따라 정부 대표단의 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김보현 전 국정원3차장, 최학래 한겨레신문사 고문과 민간대표단의 박용길 장로, 강만길 전 상지대총장, 김민하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등이 오찬을 함께 했다.
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은 당시 국가정보원장으로 2000년 6월 정상회담을 앞두고 같은달 3일 특사 자격으로 방북, 김 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의 의제를 조율하는등의 역할을 맡았었다.
또 2002년 4월에는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만나 남북관계 정상화를 내용으로 하는 '4·5합의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임 이사장은 지금도 평소에 김정일 위원장을 '최고 지도자'로 지칭할 정도로 예우를 갖춘다.
김보현 전 국정원 3차장은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의 '오른팔'로 특사 방북과 정상회담에 참여했으며 특사 방북 때에도 동행해 김정일 위원장과 구면이다.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정상회담에 참가했을 뿐 아니라 2000년 9월 평양에서 열린 2차 장관급회담 때는 남북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군사당국간 회담을 합의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박 전장관은 회담 일정을 연장해 가면서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추진, 7시간 가까이 기차와 차량을 번갈아 타고 함경도 해안가의 별장을 직접 방문했다.
최학래 한겨레신문사 고문은 한국신문협회 회장 자격으로 2000년 6월 정상회담과 8월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 각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특히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 최 고문은 호방한 성격으로 좌중을 이끌고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찬에 참석한 강만길 전 상지대 총장과 김민하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했던 주암회 멤버이기도 하다.
역사학자로 고려대 교수와 상지대 총장 등을 역임한 강 교수는 현재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어 지난 달 출범한 대통령 소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 중이고 특히 남북 학술교류에 힘쓰고 있다.
중앙대 총장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거친 김민하 수석부의장은 한때남파간첩인 고향친구의 형을 무심코 집에 머물게 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남북관계 속에서 2002년 3월 9차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에 있는형 김성하(77)씨와 반세기만에 혈육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고(故) 문익환 목사의 부인인 박용길 장로는 1995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1주기때 방북,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양정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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