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집 책장에서 여행안내서 한두 권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사전 스타일로 여행 정보를 하나에서 열까지 꼼꼼히 소개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여행서의 바이블’이라는 찬사까지 쏟아내며 전세계인들이 끼고 다니는 ‘론리 플래닛’(한글판도 나와 있다)을 비롯해 중앙M&B의 ‘세계를 간다’, 김영사의 ‘헬로 월드 트래블’ 시리즈는 인기 좋은 여행 책자로 배낭족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해외여행이 너무 흔해서 그럴까, 여행 책자들이 대개 거기서 거기라서 그럴까, 이런 책만 가지고는 왠지 아쉽다. 해외 나갔다 왔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이던 시절은 지났으니, 한 번 가도 무언가 제대로 보고 왔으면 하는 바람이 여행객들 마음 한 구석에 늘 있기 마련이다.
그냥 여행 정보가 아니라 독특한 여행 안내나 여행기를 담은 책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욕구를 반영한 것인지 모른다. 감성이 톡톡 튀고, 특별한 주제가 있는 별난 여행서들이 최근 잇따라 출간됐다.
세계여행 테마로 즐겨라
‘유럽 축구 기행’(살림 발행)은 축구 팬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책이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쟁쟁한 축구팀을 직접 찾아다니며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 볼 것 많다는 유럽에서 고성이나 거리 풍경이 아니라 오로지 축구만 쫓아다녔으니, 일종의 축구 마니아를 위한 독특한 여행서라고 할 만 하다.
영국 리버풀에서 축구산업학을 공부한 뒤 지금 국내 여러 방송사에서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서형욱씨는 “유럽배낭여행 가서 축구경기를 보려는데 어떻게 표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유럽 축구를 전문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축구팬들이 생생하게 현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게 목적이어서 아스날, 레알 마드리드 등 명문팀 홈구장 찾아가는 법 등 현장 정보와 사진이 풍부하다.
하지만 유럽의 문화라면 아무래도 예술을 빼놓을 수 없다. 미술사학자인 정석범씨가 쓴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 기행’(루비박스)은 유럽의 대표적인 문화 도시 6곳 이야기다.
자유로 상징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비롯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피렌체,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스페인 톨레도에 깃들인 예술적인 정취를 전문가의 감식안을 빌려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인 김광식씨가 쓴 ‘세계의 역사마을’(눈빛)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표적인 세계의 역사마을과 도시들을 소개한 책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전통 역사마을은 세계에서 딱 5군데. 헝가리의 홀로쾨, 체코의 홀라소비체, 슬로바키아의 블콜리네츠, 일본 시라카와고(白川鄕), 중국 홍췬(宏村)과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올라 있는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등 우리의 민속마을을 함께 소개했다.
이밖에도 전통이 잘 보존된 중부 유럽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 네팔 카트만두 분지, 중국 리장(麗江) 고성 등의 문화 경관도 엿볼 수 있다.
그림과 사진이 있어 특별한 여행
여행의 발자취를 그림으로 남겨 진한 여운을 남기는 책들도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박훈규씨의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안그라픽스)와 건축디자인을 공부한 오영욱씨의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샘터).
박씨는 호주 시드니와 영국 런던, 에딘버러의, 말 그대로 ‘언더그라운드’인 지하철역 주변에서 거리의 화가로 지내며 생긴 일들, 마주친 사람들 이야기를 담았다. ‘깜삐돌리오…’는 사진 한 장 없이 스케치와 카툰을 섞어가며 차분하게 엮어간 북미와 유럽 몇 나라 여행기이다.
그림처럼 격조를 풍기지는 못하지만 그보다 여행에 훨씬 어울리는 것은 역시 사진이다. ‘여행보다 오래 남는 사진찍기’(북하우스)는 1년 가량 지중해 연안과 남미를 돌아다닌 여행의 기록이자 여행지에서 좀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 강영의씨가 좋아하는 인물사진 찍기 노하우, 매너리즘에서 벗어난 촬영법 등을 소개했다. 그가 고른 ‘포토제닉’ 여행지 5곳은 그리스 산토리니, 모로코 페스, 터키 카타도키아, 브라질 살바도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내 멋대로 세계를 즐기다
개성 있는 방랑객의 발랄한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여행기는 흔한 편이지만,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시공사)는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책이다. 역사적인 명소를 찾고, 별미를 시식한다는 여행의 기본 같은 건 이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잡동사니들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하는 등 만화가들답게 엉뚱하고도 유쾌한 취미를 한껏 발산하는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도쿄가 이런 곳이었나” 하는 새로운 발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도쿄로 여행을 가는 것은 무엇일까나’라고 묻고 저자들은 이렇게 답한다. “느낌이 중요해.”
멕시코에서 중미를 지나 콜롬비아, 페루,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8개월 동안의 중남미 여행을 쓴 건축가 고정석씨의 ‘라틴 앨범’(바람구두), 중국, 몽골, 러시아를 국제 철도로 여행한 기록인 하헌준씨의 ‘철길따라 대륙을 누빈다’(삼우반)도 개성이 돋보이는 여행안내서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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