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15 통일대축전 3일째인 16일 남측 대표단의 평양 일정은 북측의 환대 속에서 이어졌다. 특히 북측은 정부대표단의 마지막 만찬 장소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ㆍ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했던, 국빈 연회장인 목란관으로 변경했다.
대표단 숙소가 김 전 대통령이 묵었던 백화원 영빈관으로 바뀐 데 이어 이날 만찬 역시 역사적인 장소에서 열림으로써 북측의 극진한 배려가 재차 확인됐다.
◆ 정동영 장관과 김영남 위원장간 면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끄는 정부대표단은 이날 오후 7시 10분 목란관 접견실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 김 상임위원장은 정 장관의 왼팔을 자신의 오른팔로 끼어 직접 자리를 안내하는 등 환대하는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축전행사 중 비가 많이 내려 지장이 있지 않나 근심했다”며 “결과적으로 모든 게 나무랄 데 없이 훌륭히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단이 퇴장한 뒤 정 장관과 김 위원장의 단독면담이 20분간 진행됐다.
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목란관으로 입장하는 절차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김 위원장이 북한 권력서열 2위인 점을 반영하듯 북측이 대표단 일행에게 초대장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소지품 검사까지 해 입장시간이 10분 정도 걸렸다.
당초 김 상임위원장의 면담일정은 이날 오전으로 잡혀있었으나 북측이 갑작스럽게 이날 저녁으로 늦추는 대신 김 위원장이 오전 9시부터 30분간 민간대표단을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한때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오후 8시 20분부터 열린 마지막 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40분간 진행됐다. 정 장관은 “당국 대표단이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민간만 5주년 행사를 치렀다면 얼마나 기운이 없었겠느냐”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주최하는 모임에서 주로 공연하는 것으로 알려진 왕재산경음악단의 공연도 이어져 분위기를 돋웠다.
◆ 김 위원장과 민간대표단간 환담
이날 오전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우리측 정당 대표 4명 등 20여명의 민간대표단과 환담을 나눴다.
김 위원장은 먼저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에게 “통일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부탁한다”고 인사말을 건네자 한 의원은 “제 고향이 평양이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당 장영달 의원으로부터 “남북 정당 대표간 회담을 조속히 이뤄냈으며 좋겠다”는 제의를 받고선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앞으로 한나라당도 평양을 자주 올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통일을 해 나가자”고 답한 뒤 원 의원의 팔을 잡고 웃음을 지었다.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에게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듣고 있다”며 관심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인 박용길 장로에게 “문 목사님의 뜻을 잇기 위해 고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헌신하고 계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 폐막식과 참관행사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에서 열린 체육경기와 대축전 폐막식에서 백낙청 남측 민간대표단장은 폐막 연설을 통해 “축전의 성공적인 개최를 밑거름으로 더욱 힘차게 민족 화해와 통일로 가는 7,000만 겨레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어가자”고 말했다.
앞서 남북 해외민간대표단은 이날 고 김일성 주석 생가인 만경대, 우상화 시설물을 전담 제작하는 북한 최대 종합미술창작단체인 만수대 창작사, 개선문 등을 참관했다.
2001년 8ㆍ15 축전행사 당시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방명록 파문’사건이 발생했던 만경대에서는 방명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강 교수는 방명록에 친북적인 글을 남겼다는 여론의 역풍을 받았고, 이로 인해 임동원 당시 통일부장관이 사퇴했다.
불상사 재발을 우려한 남측은 미리 북측에 방명록을 치워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4년 전 방북 당시와는 달리 평양거리의 ‘미제’, ‘원수’ 구호가 다 사라졌고, 평양시민의 태도도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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