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작가 훌리아 나바로의 장편소설 ‘성(聖) 수의(壽衣) 결사단’(랜덤하우스중앙 발행)은 예수 수의의 비밀을 둘러싼 2000년 간의 비밀을 모티프로 한 역사추리소설이다.
소설은 수의를 보관해온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 화재와 그 현장에서 혀 잘린 소사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토리노 성당의 절도ㆍ화재사건이 연쇄적이었음에 주목한 수사관들이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면서 수의의 비밀을 둘러싼 가톨릭 사제들과 독신의 정ㆍ재계 유력자 집단, 혀 잘린 범인들이 소속된 비밀결사의 뿌리깊은 음모와 알력이 드러난다.
예수 생존시의 고대 기독교에서부터 중세, 현대로 이어지며 더욱 공고해지는 ‘템플기사단’과 ‘성의 교단의 목자들’ 집단의 갈등이 시종 긴박하게 전개된다.
절대선(善)도 절대악(惡)도 아닌, 다만 정통 신앙의 미명하에 자행되는 종교 집단간 범죄의 깊은 뿌리가 파헤쳐지기까지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작가는 그 비밀과 희생의 연관들을 해박한 지식과 상상력, 치밀한 구성을 통해 흡입력 있게 풀어놓고 있다.
1357년 프랑스에서 그 존재가 확인된 이래 성의의 진위 논쟁은 미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유수의 과학집단과 교단의 뜨거운 감자였으며, 1988년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그것이 중세의 것으로 확인된 뒤에도 전혀 풀리지 않는 신비와 수수께끼를 품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은 첨예하게 엇갈려온 성의를 둘러싼 과학적 논란과 신앙을 두루 만족시키면서도 그 종교적 신비로움을 오히려 고양시키고 있다.
중세 유럽의 지하 미로처럼 음침하고 서늘한 음모의 갈래들을 따라잡으며, 때 이른 더위를 잠시나마 잊어볼 만 하다. 저널리스트이자 정치평론가인 작가는 처녀작인 이 소설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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