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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화제/‘떡고물 효자’ 많아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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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화제/‘떡고물 효자’ 많아졌네

입력
2005.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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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연기군 남면에서 4,000여평 농사를 짓는 A(75)씨는 요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은 영 씁쓸하다.

이전에는 명절 때나 얼굴을 비치던 두 아들 내외가 지난해부터 주말이면 번갈아 손자들까지 데리고 내려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올 연말부터 행정복합도시 토지보상금이 나온다는 소문 때문인지, 갈비와 건강식품 등 선물까지 한아름 싸들고 찾아온다. 두 며느리의 문안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경쟁적으로 걸려온다.

행정복합도시가 조성되는 충남 연기, 공주 지역 시골마을 곳곳은 요즘 주말만 되면 A씨의 집처럼 도시로 나갔던 자녀들의 나들이로 때아닌 활기를 띠고 있다. A씨는 “자식들이 갑자기 자주 찾아오는 이유가 보상을 받으면 조금 떼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인 것을 안다”며 “속이 훤히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러한 ‘떡고물 효자’, ‘억지 효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수십년간 문중 일에 관심 없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22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연기군 남면 양화리 마을 사람들은 지난 한식 때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집안사람 몇 명이 참석해 깜짝 놀랐다. 막상 이들의 관심은 “땅 값이 폭등했다는데 문중 땅은 어떻게 되나”에 집중돼 촌로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B씨는 “마을 주변의 논밭, 임야가 모두 문중 재산이라 보상금이 엄청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것 같다”며 “보상금 때문에 수백년 이어져 내려온 집안 전통을 산산조각 내지나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식, 집안 사람들이 내놓고 속셈을 보이지는 않지만 부동산중개업소나 농협을 들렀다 갔다는 말을 들을 땐 마음이 찜찜하다”고 덧붙였다.

17일 오후 연기군 남면의 한 다방에 모여 차를 마시던 노인들은 “땅값이 올라 목돈이 생긴다니까 집집마다 갑자기 효자 났다”며 “보상금이 나와도 일찍 나눠줄 생각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충남도는 자금관리나 재테크에 노하우가 없는 주민들의 보상금 수령 후 생길지 모를 가족간 재산분쟁이나 갈등 조정을 위해 전문가들로 컨설팅그룹을 구성해 조언을 해 주기로 했다.

연기=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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