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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바칼로레아에서 배울 것

입력
2005.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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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 프랑스는 한바탕 토론열기에 휩싸인다.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실시 첫날, 철학 논술시험 문제를 놓고 직장과 가정이 시끌벅적하다. 오죽하면 “프랑스 국민들이 철학하는 날”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그만큼 문제 수준이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올해 시험에서도 ‘인간의 정치적 행동을 이끌어가는 것은 역사인식인가’(인문계) ‘정의냐 부정의냐는 관습적으로 구별될 뿐인가’ (사회계) ‘예술작품에 대한 감수성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가’(자연계) 등의 화두가 던져졌다.

바칼로레아는 철학뿐 아니라 대부분의 시험이 논술형이다. 풍부한 독서와 깊이 있는 사고, 다양한 학내ㆍ외 활동경험이 없으면 답안을 쓰기 쉽지 않다. 문제의 성격상 사교육이 낄 여지조차 없다.

-사교육병 없는 佛 대입제도

사교육의 노예가 되다시피 한 우리의 실상은 어떤가. 요즘 서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먹고 사는 문제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버티겠는데 자식들의 미래까지 포기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허리띠를 조르고 졸라서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켰으나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집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려줄 재산도 없고 그나마 사교육도 제대로 못 시켜주니 아이들이 불행해지지 않겠느냐”는 절박감이 중산층의 가슴을 저민다. 통계청의 1분기 가계수지 동향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나라 상위 10% 가구의 교육비는 하위 10%의 7배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민들에게 교육은 계층상승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웬만한 머리에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대학에 입학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돈 없는 서민들에게 신분상승의 꿈은 신기루일 뿐이다. 돈이 학벌을 낳고 학벌이 다시 돈을 모으는 구조가 고착화한 터다.

의사와 판ㆍ검사,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 자녀가 서울대에 가는 비율이 생산직 종사자의 27배, 농어민의 30배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또 최근 5년간 서울 출신 사법시험 합격자 가운데 강남 8학군 고교 졸업자가 32%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위 10개권 고교 중 외국어고가 3개고 나머지는 모두 강남지역이어서 사시에서도 부와 권력이 세습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의 원조격인 미국도 교육의 불평등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타임스는 각각 특집기사를 통해 누구나 노력만 하면 잘살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도전을 받고 있다며 그 원인으로 대학교육을 꼽았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대학을 나온 배우자를 만나 자식의 교육에 집중투자하면 자녀도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높아 계급이 유전자처럼 유전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훨씬 엄혹하다. 공교육이 취약한 탓에 사교육비가 늘어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중ㆍ고생들이 1주일 평균 13시간의 사교육을 받고 있고, 이들 가운데 70%가 사교육 받은 후 학교성적이 올랐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니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웬만한 대학에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게 현행 대입제도다.

수능시험이 그렇고, 언어논술, 수리논술, 심층면접이란 포장을 씌운 사실상의 본고사 형태의 시험이 그렇다. 지금도 지방 학생들은 수능시험이 끝나면 논술과 면접 준비를 위해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서울로 향한다.

이런데도 대학들은 본고사 부활과 고교등급제 시행, 나아가서는 평준화해제만이 살길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가계가 부도나고, 서민경제가 파탄나고, 나라가 양극화로 폭발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경쟁보다 사회통합이 우선

공교육의 이상은 부모의 빈부귀천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자기실현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는 데 있다. 돈 없는 사람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가 할 일이다. 교육의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교육의 사회통합적 기능을 우선할 때이다. 바칼로레아가 망국적인 사교육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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