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말괄량이 삐삐는? 또 빨강머리 앤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니 정해진 외모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마다 그들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개 애니메이션이나 그림책에서 형상화한 얼굴이지요.
어릴 때 우리 집에 있던 ‘앤’은 창조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자그마한 판형에 2단 세로쓰기로 된 10부작이었습니다. 앤이 결혼하고 자식들이 주인공이 되기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였지요.
일본어판에서 중역한 것이라 에이번리 마을은 아봔리 마을로, 매튜는 마슈로 표기되어 있었고 깨알같이 작은 글씨에 그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뛰어난 묘사를 읽노라면 에이번리 마을의 풍경과 앤의 생김새가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창조사판 ‘앤’에 매료되었던 한 친구는 결국 딸에게 ‘앤’을 못 사줬다고 합니다. 한 세대 후에 출판된 ‘앤’에서는 예전에 받았던 감정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러는 동안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본 딸은 더 이상 책으로 읽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애니메이션의 앤은 제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마르고 주근깨투성이에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알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소녀라기에는 너무 통통하고 귀여웠으니까요.)
사람이 태어나서 늙어가는 과정을 ‘옷갈아입기형’과 ‘나이테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먼저 입던 옷을 벗어버리는 ‘옷갈아입기형’이 과거를 잊어버리는 유형이라면 ‘나이테형’은 지난 세월을 간직한 채 자라는 나무와 같다는 말이겠지요. 그리고 그 나이테 한가운데에는 동심이 있고요. 그러나 옷을 갈아입었다고 그 옷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일상에 쫓겨 지난 세월을 잊고 사는 어른들도 어린이책을 읽다보면 마음 깊은 곳에 묻혀있던 어린 시절의 말랑말랑한 감성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애들 읽히려고 산 그림책에 엄마가 더 열광하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러나 혹시 저나 제 친구처럼 책 내용뿐만 아니라 그 책을 둘러싼 개인의 기억까지도 아이들에게 강요하려 들지는 않는지요?
이야기의 내용이나 주제는 세월을 관통하여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느 시기에 나온 특정한 책은 판형, 지질이나 그림이 제각각이고, 시대적 분위기나 그 책을 읽을 때 독자의 상황도 각자 다를 텐데 어떻게 책에 얽힌 기억을 다른 세대와 공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동년배들끼리 느낄 동질감일 것입니다.
지금도 백설공주나 콩쥐가 내 머리에 저장된 그림이 아니어서 선뜻 책을 못 고르는 분들, 글과 그림의 질을 보고 선택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애들과 얘기하는 겁니다. 엄마가 상상한 콩쥐와 아이가 생각한 콩쥐, 그리고 그림책에 나오는 다양한 콩쥐 모습에 대하여.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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