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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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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입력
2005.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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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워서 한 다리는 서쪽 바다, 한 다리는 동쪽 바다에 척 담근 할머니.마고할미는 엄청난 거인이다. 어찌나 큰지 자고 일어나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더니 하늘이 쩍 갈라지면서 숨어있던 해와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오줌을 눴더니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다. 치마폭으로 돌을 날라 둑을 쌓아서 바다를 가두고 손가락으로 땅을 훑어서 강을 만들고 손가락 사이 삐져나온 흙으로 산을 만들었다.

유은실의 창작동화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는 우리나라 신화 속 마고할미를 오늘로 불러내 발랄하게 엮은 이야기다. 아홉 살 난 윤이네 집에 바깥일로 바쁜 엄마 대신 집안일을 해줄 할머니가 온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밀가방을 들고 나타난 할머니는 괴팍하고 심술궂다. “나한테 책 읽어달라고 하지 마. 눈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나는 세상에서 책 읽는 게 제일 싫어.” 싫어하는 것 투성이에 식구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고 밥도 엄청 많이 먹고 집안일도 삽시간에 뚝딱 해치우고. 윤이는 할머니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러던 어느날 마고할미 그림책을 보다가 눈치를 챈다. 할머니는 “마고할미? 그런 사람 몰라.” 하고 시치미를 떼지만, 윤이 생각에는 마고할미가 틀림없다.

유은실은 장편동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서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 린드그렌의 작품 세계를 한 소녀의 성장기에 솜씨 좋게 짜넣었던 작가다. 이번 작품에도 마고할미가 들려주는 견우직녀, 해님달님, 나무꾼과 선녀 같은 우리나라 옛이야기가 끼워져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기발하다.

마고할미가 밤 하늘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쟤(달)는 아직도 동생(해)이랑 싸우나? 쟤가 엄마 잡아먹은 호랑이한테 ?기다가 동아줄 타고 하늘로 간 애잖아.

사이가 좋으면 가끔 같이 나올 텐데, 꼭 따로 나오잖아.” 별을 보고 하는 소리도 별나다.

견우와 직녀가 연애하느라 일 좀 안 했다고 떼어놓은 옥황상제는 ‘사랑도 모르는 고집불통 영감’ 이라고 욕하질 않나, 두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간 선녀가 외손주를 구박하는 아버지 때문에 울면서 지어 부른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하질 않나. 황당하지만 아주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의 능청에 웃음이 나온다.

간결한 문장과 유쾌한 상상력으로 엮은 재미있는 동화다.

신화나 옛날 이야기를 주물러서 이렇게 신기한 새 이야기를 빚어낼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작가가 지어낼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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