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시골들은 죄다 ‘귀신’들이 지키는 죽은 마을이라 합디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살아있습니다. 젖먹이 울음소리가 나고 골목을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도 8명이나 있는, 요즘엔 흔치 않은 시골 마을입니다.”
60가구 150여명이 모여 사는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 주민들의 자랑이다. 이 마을이 저 무논의 방금 심은 모처럼 생기가 나기 시작한 건 얼마되지 않았다.
사진 작가들에게나 알려졌던 이 마을을 농촌진흥청이 2002년에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했다. 다랑이논의 빼어난 아름다움 외에도 참게가 살고 미역과 톳, 전복이 지천으로 나는 무공해 마을이라 관광으로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한 것이다. 올 초에는 다랑이논이 국가 지정 문화재의 일종인 명승(名勝)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알음알음 마을을 찾게 된 관광객들도 2003년엔 3만명으로 늘더니 작년엔 5만명에 달했다.
주민들은 올해는 8만명까지 내다본다. 다랭이 마을의 농촌 전통 마을 추진위원장인 김주성씨는 서울에 올라갔다가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보았던 시민들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모두들 똑 같은 표정이었죠. 짜증을 억누르고 있는 무표정.
그런 사람들이 이 마을에 오면 얼굴이 밝아집니다. 옛 모습과 청정 자연을 간직한 이곳에서 어깨를 짓누르던 많은 짐들을 풀어낸 듯, 홀가분해져서 떠납니다. 그래서인지 손님들의 절반 이상이 재방문을 약속합니다.”
마을은 다양한 체험 거리로 도시인들을 즐겁게 맞는다. 농사 체험은 기본. 다랑이 논두렁에서 해풍을 맞으며 먹는 새참은 꿀맛이다. 폐교된 분교의 운동장에서는 추억의 운동회가 열린다.
장애물 달리기 등으로 땀을 뺀 다음에는 홍합을 삶아다가 막걸리 파티를 벌인다. 단체로 방문한 학생들은 캠프 파이어를 한 뒤 그 잔불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먹을 수 있다. 배를 빌려 타고 나가 해안 절벽을 감상하거나 그물을 건져올려 즉석에서 회를 떠서 소주 안주로 삼을 수도 있다. 주민들은 올해는 바다 래프팅도 시도할 참이다.
손님들을 가장 만족시키는 것은 주민과 피부로 만나는 민박 체험. 조금은 불편한 시설이지만 정성스레 맞는 주민들에게서 가족 이상의 정(情)을 느끼고 간다. 이전 태풍 매미가 남해를 강타했을 때 일이다.
마을의 민박 집들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객지로 떠난 자식들의 안부 전화가 없었더라도, 그 집을 방문했던 손님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걱정해서 건 전화들로 마을은 따뜻했다.
마을엔 다랑이논 말고도 볼거리가 많다. 해안 가까이 있는 가천 암수바위 한쌍은 명물. 5.8m의 거대한 숫바위가 힘차게 하늘로 솟았고 아기를 밴 여인의 형상을 한 암 바위는 석축을 기대고 섰다.
일명 미륵바위로도 불려 주민들은 이 바위에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다. 바닷가에는 작은 규모지만 몽돌해변이 있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또 이 해안은 전국에서 꾼들이 몰려드는 감성돔 낚시 포인트이기도 하다.
다랭이 마을을 들렀다면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있으니, 마을을 감싸고 선 설흘산이다. 481m의 높지 않은 높이지만 정상 봉수대에 서면 모든걸 품을 듯한 앵강만의 아늑함과 함께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8부 능선까지 찻길이 닦여져 있어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산행에 무리가 없다. 약간의 오르막으로 입이 마를 때면 길가의 산딸기가 갈증을 축여주고 호젓한 좁은 산길엔 나비가 내내 동무해 준다.
다랭이 마을에서의 민박과 각종 체험은 인터넷(http://darangyi.go2vil.org)으로 예약해야 한다. 13가구가 민박을 하고 있는데 성인 1인당 1박 3식에 2만5,000원. 초등생은 2만원, 미취학 아동은 공짜다. 체험비는 종류에 따라 1,000원부터 1만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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