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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108 층층 억척의 땅, 가천 다랭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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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108 층층 억척의 땅, 가천 다랭이 마을

입력
2005.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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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물결친다. 한 데 포개졌다 삐져나오길 여러 번. 선들은 제각각 장단을 타고 둥실 휘돌아 나간다.

남해 가천 다랭이(좁고 작은 계단식 논배미를 뜻하는 ‘다랑이’의 남해 사투리)마을은 하나의 거대한 설치 예술 작품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인공의 미(美). 게다가 땀과 눈물로 빚어낸 인고의 시간이 축적돼 있다면 그 감흥의 파장은 몇 곱으로 증폭된다.

남해도의 아랫자락 남면 홍현리의 가천 마을. 설흘산 자락이 급하게 바다로 치내린 기슭에 집과 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삿갓에 감춰질 정도로 작다는 삿갓배미에서부터 300평짜리 너른 논까지 680여 개의 논이 바다에서부터 켜켜이 쌓여있다. 논 계단을 세어보니 그 수가 108개라는 주민들의 얘기다.

이모작으로 마늘을 수확하느라 다랑이논은 이제야 막 모내기를 마쳤다. 며칠을 두고 심어지느라 그 동안 파도 소리를 듣고, 해풍도 쐰 모들은 그 빛이 조금씩 다르다. 볕을 받아 반짝이는 무논들이 빚어낸 초록의 농담(濃淡)은 바다 풍경에다 기암의 산자락과 어울려 보는 이의 넋을 뺀다.

산 능선을 그대로 따른 논두렁은 위에서 내려다 보면 영락없이 지도의 등고선 모양이다. 석축으로 떠받친 논두렁. 주먹만한 것부터 머리통만한 것까지 일일이 손으로 쌓아 올렸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닿자 마음 한구석이 아려 오는 듯. 못다 헤아릴 많은 날들의 피와 땀, 눈물을 접착제 삼아 석축을 쌓아 올렸으리라.

이 마을의 농촌 전통 마을 추진위원장인 김주성(49)씨의 설명은 이렇다. 이 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400여년 전쯤. 설흘산 건너편 자락 어느 마을 사람들이 끈질긴 흉년에 내몰린 나머지 물고기 잡고 해초라도 먹을 수 있는 바닷가를 찾아 떠났다.

이미 다른 이들이 터잡은 곳을 피해 찾은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는 것이다. 급경사진 자락에 배 한 척 댈 수 없는 해안. 산에서 물이라도 흘러내리지 않았다면 결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다.

먹고 살기 위해 산기슭을 깎아 일군 농지가 바로 다랑이논이다. 조금이라도 물길이 지날 수 있다면 비록 손바닥만해도 논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어 소가 쟁기질을 해야만 하는 논은 그렇게 지난한 역사를 품고 있다.

어느덧 해가 졌다. 민박집 툇마루에 걸터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자니 개구리 떼가 틈을 주지 않는다. 요란한 울음 소리가 밀려 들어 온다. 층층이 포개진 무논에서 무차별 난사되는 개구리 소리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더욱이 바닷가임에랴. 파도의 리듬을 타고 아예 서라운드로 난사한다.

남해=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 민박 체험

“요새 시골들은 죄다 ‘귀신’들이 지키는 죽은 마을이라 합디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살아있습니다. 젖먹이 울음소리가 나고 골목을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도 8명이나 있는, 요즘엔 흔치 않은 시골 마을입니다.”

60가구 150여명이 모여 사는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 주민들의 자랑이다. 이 마을이 저 무논의 방금 심은 모처럼 생기가 나기 시작한 건 얼마되지 않았다.

사진 작가들에게나 알려졌던 이 마을을 농촌진흥청이 2002년에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했다. 다랑이논의 빼어난 아름다움 외에도 참게가 살고 미역과 톳, 전복이 지천으로 나는 무공해 마을이라 관광으로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한 것이다. 올 초에는 다랑이논이 국가 지정 문화재의 일종인 명승(名勝)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알음알음 마을을 찾게 된 관광객들도 2003년엔 3만명으로 늘더니 작년엔 5만명에 달했다.

주민들은 올해는 8만명까지 내다본다. 다랭이 마을의 농촌 전통 마을 추진위원장인 김주성씨는 서울에 올라갔다가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보았던 시민들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모두들 똑 같은 표정이었죠. 짜증을 억누르고 있는 무표정.

그런 사람들이 이 마을에 오면 얼굴이 밝아집니다. 옛 모습과 청정 자연을 간직한 이곳에서 어깨를 짓누르던 많은 짐들을 풀어낸 듯, 홀가분해져서 떠납니다. 그래서인지 손님들의 절반 이상이 재방문을 약속합니다.”

마을은 다양한 체험 거리로 도시인들을 즐겁게 맞는다. 농사 체험은 기본. 다랑이 논두렁에서 해풍을 맞으며 먹는 새참은 꿀맛이다. 폐교된 분교의 운동장에서는 추억의 운동회가 열린다.

장애물 달리기 등으로 땀을 뺀 다음에는 홍합을 삶아다가 막걸리 파티를 벌인다. 단체로 방문한 학생들은 캠프 파이어를 한 뒤 그 잔불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먹을 수 있다. 배를 빌려 타고 나가 해안 절벽을 감상하거나 그물을 건져올려 즉석에서 회를 떠서 소주 안주로 삼을 수도 있다. 주민들은 올해는 바다 래프팅도 시도할 참이다.

손님들을 가장 만족시키는 것은 주민과 피부로 만나는 민박 체험. 조금은 불편한 시설이지만 정성스레 맞는 주민들에게서 가족 이상의 정(情)을 느끼고 간다. 이전 태풍 매미가 남해를 강타했을 때 일이다.

마을의 민박 집들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객지로 떠난 자식들의 안부 전화가 없었더라도, 그 집을 방문했던 손님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걱정해서 건 전화들로 마을은 따뜻했다.

마을엔 다랑이논 말고도 볼거리가 많다. 해안 가까이 있는 가천 암수바위 한쌍은 명물. 5.8m의 거대한 숫바위가 힘차게 하늘로 솟았고 아기를 밴 여인의 형상을 한 암 바위는 석축을 기대고 섰다.

일명 미륵바위로도 불려 주민들은 이 바위에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다. 바닷가에는 작은 규모지만 몽돌해변이 있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또 이 해안은 전국에서 꾼들이 몰려드는 감성돔 낚시 포인트이기도 하다.

다랭이 마을을 들렀다면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있으니, 마을을 감싸고 선 설흘산이다. 481m의 높지 않은 높이지만 정상 봉수대에 서면 모든걸 품을 듯한 앵강만의 아늑함과 함께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8부 능선까지 찻길이 닦여져 있어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산행에 무리가 없다. 약간의 오르막으로 입이 마를 때면 길가의 산딸기가 갈증을 축여주고 호젓한 좁은 산길엔 나비가 내내 동무해 준다.

다랭이 마을에서의 민박과 각종 체험은 인터넷(http://darangyi.go2vil.org)으로 예약해야 한다. 13가구가 민박을 하고 있는데 성인 1인당 1박 3식에 2만5,000원. 초등생은 2만원, 미취학 아동은 공짜다. 체험비는 종류에 따라 1,000원부터 1만원까지.

남해=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남해/ 가볼만한 명소

‘남해 똥배’란 말이 있다. 불과 수 십년 전만 해도 농사에 쓸 거름을 얻으러 여수, 돌산도로 똥을 거두러 다녔던 남해 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남해 사람들의 근면함과 억척스러움을 상징하는 말이다.

남해 주민들은 그들을 이토록 억세게 만든 척박한 환경의 이 땅을 ‘보물섬’이라 부른다. 살기엔 팍팍해도 그 풍광의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견줄 데가 없다고 자부하면서.

남해를 대표하는 산은 금산(錦山). 비단을 두른 듯 아름답다는 산이다. 꼭대기에 걸려있는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전국 3대 관음 도량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기도발 잘 받기로 유명한 암자다. 상사바위, 장군암, 쌍홍문 등 38경으로 대표되는 기암들은 금산의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특히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주 해수욕장과 수많은 섬들이 뿜어내는 한려수도 절경이 일품이다. 금산은 복곡 매표소에서 보리암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과 상주 해수욕장에서 오르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그 중 승용차가 중턱까지 오를 수 있는 복국 매표소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특히 인기다.

1973년 일찍이 남해대교가 놓이면서 반육지가 됐다고 하지만 남해는 분명 섬이다.

그 ‘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안 도로 일주다. 지족을 출발해 물건항과 미조항을 잇는 물미 해안 도로는 남해의 수려한 풍광의 바다를 만나게 해 주는 길로 다양한 절경을 만나게 된다. 창선교 밑을 흐르는 지족 해협에는 V자형 나무 말뚝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해의 자랑인 죽방렴이다.

빠른 물살이 드나드는 물목에 참나무 말뚝을 박고 대나무발로 그물을 쳐둔 뒤 죽방에 들어 온 물고기가 물이 빠져 갇혔을 때 건져 올리는 원시 어업 기구다. 죽방에 걸려온 멸치 등 물고기는 그물로 거둔 것과 달리 비늘 등이 손상되지 않고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은 가천 다랑이논과 함께 이 죽방렴을 ‘남해의 살아있는 자존심’이라고도 한다. 역사를 고스란히 품어낸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날 좋은 때, 낙조 무렵이면 죽방렴 너머로 떨어지는 햇덩이가 잊지 못 할 광경을 연출한다.

1.5㎞의 방풍림으로 해안을 둘러싼 물건 방조 어부림 뒤편에는 독일 마을이 있다. 1960년대 외화 벌이를 떠났던 서독 광부, 간호사들이 국내로 돌아 와 정착하며 여생을 보내는 곳. 하얀 벽과 빨간 지붕으로 통일된 집들이 이국적이다.

남해 최담단 항인 미조항에서는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 특히 공주식당(055-867-6728) 등에서 맛볼 수 있는 멸치회나 갈치회가 유명하다. 막걸리로 씻어내 비린내가 없고 매콤하게 버무려져 입맛을 돋운다.

남면과 서면을 돌아나가는 서쪽 해안 도로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자궁 같은 포근한 앵강만을 끼고 돌아 다랭이 마을을 지나면 향촌 몽돌해안과 사촌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해안 절경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길가에 늘어선 낮은 봉우리들을 뒤덮을 듯한 붉은 황토밭도 시선을 잡아 끈다. 다랑이논이라도 만들 듯 알뜰하게 일궈낸 경지다. 붉은 털모자를 뒤집어 쓴 듯한 생김새가 정겹다.

구미숲을 지나면 남해스포츠 파크. 한겨울 축구 야구 등 국내 운동 선수들이 동계훈련 오는 장소다. 남해대교가 서 있는 해협은 이 충무공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노량이다. 남해대교 인근 관음포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처음 모셨던 전몰 유허(遺墟)가 있다. 충무공의 유해는 이 곳에서 3개월 가량 모셔졌다가 뭍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당시의 가묘가 지금도 남아 있다.

남해=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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