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율이 고인에겐 영혼의 자유를, 산자에겐 마음의 평화를 선사할 수 있기를….”
15일 오후 8시 인천 부평구 전통타악예술원 ‘공간’ 사무실. ‘어이하리/어이해/어이하나/너를/어이하나.’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 자식을 잃은 부모의 울부짖음이 넋두리가 돼 시나브로 방안을 적신다. 그 애잔한 울음에 해금도 울고 가야금 대금 피리도 화답했다.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이 곡의 이름은 ‘꽃무덤’. 지난해 6월 머나먼 타국 이라크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고 김선일씨를 기려 여성 국악그룹 ‘팔음(八音)’이 눈물로 쓴 계면조 곡이다. 팔음은 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 등 재료로 만들어진 8가지 국악기에서 나는 음’을 뜻한다.
이들은 음악강사나 악단생활로 하루종일 만져 이골이 날법한 악기를 그 어느 때보다 정성스레 부르고 치고 켜고 튕긴다. 지난해 12월 국악의 대중화와 창조적 활동을 기치로 걸고 8명이 모인 이래 “요즘처럼 악기가 척척 몸에 붙은 적이 없다”고 했다.
김선일 피살 1주기(23일)에 맞춰 벌어지는 24일 촛불추모집회와 26일 ‘반전행동의 날’ 추모문화제 등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는 행사에서 이 곡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매주 1차례 모이기도 힘들었던 단원들은 1주일에 3번이나 함께 하며 오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추모공연을 제안한 것은 해금주자 서현인(27ㆍ여)씨였다. “사고 당시엔 며칠동안 머리 속이 꽉 막혀 아무 일도 못했는데 어느새 그 비극을 잃어버린 저를 보게 됐어요. 사회적인 아픔을 망각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무료 공연을 제의했는데 모두 흔쾌히 받아들였죠.”
마침 단원 중에 작곡을 맡고 있는 김민선(31ㆍ여)씨가 김선일씨 사망 당시 슬픔에 북받쳐 개인적으로 만든 곡이 있었다. 단원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곡을 다듬어 ‘꽃무덤’을 완성했다. 1년 전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 그날의 아픔과 절망감을 오롯이 살려내기 위해 며칠동안 가슴앓이도 했다.
소리를 맡고 있는 박은정(27ㆍ여)씨는 “소리를 하고 있노라면 마음 깊은 곳이 절로 아려온다”고 했다. 단원들은 하나같이 “사람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전쟁 같은 비극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아름다운 음악이 그 자리를 채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들의 소박한 소망이다.
노래는 2악장이다. 1악장엔 가족의 슬픔을, 2악장엔 죽은 이의 넋을 담았다. ‘맑디 맑은 네 영혼 저 들판에 묻어주리/꽃으로 묻어주리.’(1악장) ‘나는 나는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갈래/묶여 있던 팔과 가려진 눈동자 이제야 자유롭네.’(2악장) 10분짜리 곡은 끝났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가슴 한구석을 후벼 파고 있었다.
글ㆍ사진 인천=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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