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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음식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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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음식남녀

입력
2005.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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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에 만들어진 영화 ‘음식남녀(飮’食男女)를 다시 보았다. 요리사 아버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딸들의 삶이 드라마틱한 가족영화다. 영화의 틈새마다 아버지의 기교와 깊이 있는 조리 장면이 이어지며 다소 무거워 질 가족사를 경쾌하게 끌어가는 영화. 나는 영화도 영화지만, 제목을 특히 좋아한다.

미국이나 유럽등지에서 영어로 개봉되었을 당시의 제목은 ‘먹고 마시고 남과 여(Eat,,Drink,,Man and Woman)’. 동양권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극장에서 ‘음식남녀’를 보려는 인파가 줄을 이었을 이유에는 바로 제목이 있지 않을까?

대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일과 남녀를 빼면 무슨 낙이 더 있나 하는, 만국 공통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보여주니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지만, 먹고 마실 것도 남녀도 세상에는 많으니까 삶은 더 재미있다. 그래서 더욱, 일에 몰두하기 어려워지는 계절이다.

♡ 크림수프와 간장 파스타

‘요리사’ 아내를 둔 덕에 나의 남편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는데, “맛있는 거 매일 먹어?”다. “집에서는 뭐 해줘?”라든가 “지난 주 한국일보에 나온 거 먹어봤어?”와 같은 질문들도 자주 듣는단다.

우리가 교제하던 시절부터 우리 둘 사이에는 언제나, ‘음식’이 끼어 있었다. 맛난 것 마다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호기심 많고 입맛 까다로운 남편은 특히나 나의 요리들을 즐겨했다.

그를 처음 초대해서 만들어 준 요리가 아마 녹색의 크림수프와 표고를 넣은 간장 파스타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 때가 서로 만난 지 백 여일 되었을 때다.

마장동의 우시장으로부터 자갈치 시장의 난전까지 나를 이끌며 밥을 사던 그가 하루는 투정을 부렸던 거다. “요리사를 사귀면 매일같이 요리를 먹는 줄 알았더니, 뭐 이렇게 짜냐?” 고. 그래서 만나 지 삼 개월이 더 지나서야 처음으로 ‘내 맛’을 먹여주게 되었다.

햇 아스파라거스를 다진 마늘, 버터, 다진 양파와 볶다가 맛술이나 백포도주를 붓고 살짝 익힌 다음 블렌더에 곱게 갈고는 다시 물과 크림을 섞어서 약하게 끓이는 수프를 그는 너무 맛있어 했다.

날씨가 추운 날이었는데, 뱃속까지 뚝 떨어지는 수프의 온기가 내 주방에서 처음 밥을 먹는 긴장감을 풀어줬다고 후에 말해 주었으니 메뉴 선정은 일단 성공. 이어진 메뉴는 표고버섯을 절편처럼 도톰하게 썰어 넣고 간장과 매실 당, 참기름으로 달콤 짭짤하게 볶은 퓨전 파스타였는데 그 맛은 황홀하게 취하기 시작한 기분과 함께 뭉뚱그려져 기억 된다나 어쩐다나.

아무튼 전에 선물로 받은 샴페인까지 냉장고에서 특별히 꺼내어 축배를 들었던 그날 이후 우리가 더 가까워졌음은 물론이다.

♡ 스테이크 샌드위치

나의 남편은 글을 쓰는 기자다. 기자라서 매일 뛰어다니든지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원고만 쓰든지 둘 중 하나로 한 달을 보낸다. 마감에 묶여 밥 먹을 시간도 없는 그를 위해 언젠가부터 나는 도시락을 종종 만들어줬다.

가장 처음 싸 줬던 도시락이 샌드위치였는데, 제 자리에 앉아서 먹기 편하라고 나름 배려하여 고른 메뉴였다. 고기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소고기를 조금 사서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하고 양파를 많이 준비했다.

양파는 버터를 넣은 기름에 볶다가 소금과 후추, 와인 식초와 설탕을 넣어 뭉근히 졸이는데, 고기와 잘 어울리는 새콤달콤한 맛이 된다. 느끼하지 않은 바게트 빵을 횡으로 갈라 굽고 그 사이에 양상추와 볶은 고기, 양파와 피클을 넣으면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좋다.

첫 도시락에 기뻐하는 그를 보며 노란 계란을 덮은 오므라이스, 구운 맨 김과 양념장을 곁들인 흰 밥, 양념 멸치를 다져 넣어 꼭꼭 빚어낸 주먹밥 등으로 도시락을 싸주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도시락들도 우리의 결혼을 성사시킨 공을 받아 마땅하다.

지친 업무가운데도 내게서 배달된 도시락을 펼쳤을 때만큼은 내게 고마워했을 터이고, 업무 후에 만난 나에게 당연히 더 따뜻하게 대해줬을 터이니 좋은 순환을 만드는 계기가 된 것. 남자친구 혹은 남편의 충성도(?)를 높이는데 이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친구들에게 자주 귀띔해 준다. 우스갯소리로 내 음식에 ‘중독’되어 금단 현상이 두려워 결혼했다고 남편은 말하곤 하니까.

하루 세 끼를 챙기는 사람을 기준으로 볼 때 한 해에 약 천 백 끼니를 먹게 된다. 남녀가 만나서 일 년을 교제할 때 끼니 중 반만 함께 해도 오백 번 이상의 밥을 나눠 먹는다는 얘기다.

오백 번의 밥을 맛있게, 재미있게, 고맙게 먹다보면 자신의 인생이 영화 ‘음식남녀’, 그 이상이 된다. 세상은 넓고 ‘음식남녀’는 도처에 널렸으되 어울리는 음과 식을, 꼭 맞는 남과 여를 만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오백 번, 천 번을 함께 밥 먹어도 끼니마다 새롭고 고맙기가 어렵더라도 시도해 봄 직 하지 않은가. 짧은 한 평생에 세瓚?음과 식을 함께 먹고 마실 남과 여를 찾아보는 것, 이미 만났다면 잘 간직하는 것 말이다. 바야흐로 연애하기 좋은 초여름이다.

▲ 표고버섯파스타

표고버섯 3~4개, 파스타300그램, 피망1/2개, 양파1/3개, 다진 마늘 1작은 술, 간장 1큰 술, 포도 식초 1큰 술, 설탕 1~2작은 술, 참기름, 깨, 파, 버터, 소금, 후추.

1. 팬에 기름과 버터를 달구고 두껍게 슬라이스 한 표고버섯과 피망, 다진 마늘과 다진 양파를 볶다가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다.

2. 끓는 물에 파스타를 삶아서 건져둔다.

3. 1에 2를 넣고 간장, 식초, 설탕, 참기름, 깨를 넣고 볶다가 통후추를 뿌린다.

4. 3을 접시에 담고 파를 썰어 뿌린다.

▲ 스테이크샌드위치

바게트 1/3개, 샤브샤브 고기 5~6조각, 양파 1개, 샐러드 야채, 소금, 후추, 버터 60그램, 발사믹 식초 3큰술, 설탕 1큰술, 다진 피클 약간.

1. 양파는 원형으로 썰어서 50그램의 버터에 볶다가 발사믹 식초와 설탕을 넣고 약불에서 졸인다음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2. 샤브샤브 고기는 소금, 후추로 밑간만 해서 팬에 굽는다.

3. 바게트를 횡으로 갈라서 팬에 살짝 굽고 버터를 바른다.

4. 3의 빵 사이에 샐러드 야채를 넣고 1의 양파와 2의 고기를 넣고 다진 피클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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