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8개월의 해외 도피 끝에 14일 새벽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모습은 초췌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백발은 더 성겨졌고 눈썹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백미(白眉)로 변했다.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 동안의 마음 고생과 병고를 보여주는 듯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재계 서열 2위 기업을 이끌어가던 기업인 김우중의 활기찬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계경영을 주창해 한 때 ‘김기즈칸’으로까지 불리던 그가 병색이 완연한 노인으로 돌아와 검찰에 연행되는 모습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김우중으로 대표되는 대우그룹의 흥망사는 개발 연대에 압축성장을 해 온 한국 경제의 굴곡과 성장통의 역사였다.
김 전회장의 처리를 둘러싸고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엄벌론’과 정상을 참작해 선처해야 한다는 ‘동정론’이 팽팽히 맞서 있는 것도 대우사태가 지닌 의미와 이해관계가 그 만큼 크고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우그룹의 과도한 차입경영은 한국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김 전회장이 저지른 부채경영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무려 30조원에 달하는 혈세가 공적자금으로 투입됐다. 공적자금은 지금까지 7조7,000억원만이 회수됐을 뿐이다. 대우그룹이 부실화하면서 3만여 대우 협력사가 부도위기에 봉착했고 금융권도 부실대출로 휘청거렸다.
38만여명의 소액주주들도 3조원 가까운 피해를 봤다. 소액주주들은 휴지조각으로 변한 주식을 들고 가슴을 쳐야 했다.김 전 회장이 실패한 경영인으로서 수많은 대우 임직원과 주주는 물론 국민경제에 엄청난 손실과 피해를 입힌 데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경영방식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는 해도 그의 '세계경영'이 해외시장 개척을 선도하면서 한국경제의 활력을 키워낸 것은 분명한 공(功)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가 앞장서 개척했던 인도나 동구권 등 신흥시장의 성장이 두드러지고 우리의 주력 수출시장으로 떠오른 것만 봐도 그가 쌓은 업적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그는 최근 경영의 화두로 떠 오르고 있는 블루오션(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전략을 10여년 앞서 실행한 기업인이었다.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동구권과 인도에 깃발을 꽂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글로벌 경영의 원조였다. 김 전 회장의 개척자 정신과 세계 경영의 기치야 말로 한국 경제가 물려받아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대우그룹은 수출 주도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서 1만달러로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기업이다. 재계 일각에서 김 전 회장을 “한국을 세계에 내다 판 위대한 상인”이라고 극찬하는 이유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한국 경제의 산업화에 기여했다면 김 전 회장은 한국 경제의 세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공과 논란 속에 검찰 수사는 시작됐다. 차제에 철저한 사실 규명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대선자금 수사로 불똥이 튈 수도 있겠지만 피해가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실패한 기업의 경험 자체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의 귀중한 교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우중 전회장의 공과는 사실관계를 확정지은 뒤 따져도 결코 늦지 않다.
이창민산업부장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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