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철거된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금화아파트 19개동은 높이 105m의 금화산 중턱에 있었다. 1968년 서울의 아파트 1호단지로 기공식을 올린 이 아파트가 산중턱에 지어진 사연이 걸작이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회의석상에서 실무진이 위험하다며 반대하자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새끼들아,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냐.” 김 시장만큼 전시효과와 공적 쌓기를 중시했던 행정가도 없다. 하지만 퇴직한 시청 공무원들에게 역대 시장 가운데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을 들라면 그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청계고가와 세운ㆍ낙원상가를 세우고, 남산 1ㆍ2호터널을 뚫었으며, 400동에 달하는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시내 곳곳에 수백개의 지하도와 육교를 만들고 여의도와 한강ㆍ강남개발의 첫 삽을 뜬 것도 그였다.
‘불도저 시장’의 원조인 그는 입버릇처럼 외쳤다. “건설은 나의 종교다.” 그의 뒤를 이은 양택식 시장과 구자춘 시장도 파고, 부수고, 짓고, 뚫고, 세우는데 임기 전부를 보내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명박 시장도 불도저라는 명성을 얻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취임하자 마자 청계고가 철거, 강북뉴타운 개발, 대중교통 개선사업, 서울시민광장 조성 등의 대규모 사업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18일에는 월드컵공원(100만평)과 올림픽공원(50만평)에 이은 또 하나의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할 35만평 규모의 ‘뚝섬 서울 숲’이 열린다. 그리고 세 달여 후에는 40여년 만에 청계천의 맑은 물이 다시 흐른다.
▦같은 개발이라도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에 비중을 둔 때문인지 이 시장의 별명이 ‘컴도저’로 업그레이드됐다. 컴퓨터와 불도저의 합성어로 막무가내식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머리를 쓴다는 의미다. 호의가 가득 담긴 것으로 봐서 시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또 하나 있다. ‘여우 불도저’. 컴도저와 비슷한 뜻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마냥 그렇지 만은 않아 보인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의 공동책임자이면서 이를 “군청 수준”이라며 염장을 질러댄 것과 연관 지어 보면 정치적인 고려를 앞세워 잔꾀를 자주 부린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행정에 정치색을 덧칠하면 잘한 일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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