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 이어 조선일보가 지난 9일 신문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순간 떠오른 건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의 명언이었다.
신 위원장은 지난해 말 신문법과 관련하여 “열린우리당은 전술도 전략도 없는 무뇌아 수준”이라면서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국무총리 등이 보수 신문 비판을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들의 ‘감정’ 섞인 언론 비판은 “언론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을 ‘친노’나 열린우리당 추종자처럼 오해하도록 하는 악영향만 끼칠 뿐”이라는 것이다.
-일부신문 위헌訴는 제 발등찍기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조선일보가 신문법이 5공의 언론기본법을 빼닮았다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그런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동아ㆍ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정권도 영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제3자적 관점에서 보는 신문법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건 신문법이 궁극적으론 동아ㆍ조선을 보호해 주는 법이라는 사실이다. 신문법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기들의 발등을 찍고 있는 동아ㆍ조선의 미욱함을 탓하기에 앞서 그간 한국 신문 산업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돼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신문법은 바로 그런 보호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법이다. 동아ㆍ조선은 신문 산업 전체의 안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신문법이 우물 안 자기 밥그릇에 미칠 영향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업계의 리더라고 보기엔 그 작태가 한심하다. 요즘 유행하는 ‘블루 오션’ 전략도 모르는가?
신문은 이른바 ‘방통 융합’‘디지털 컨버전스’‘매체 통합’ 등의 열풍으로부터 자유로운 무풍지대가 아니다. 시가 총액 512억 달러(약 51조2,000억원)를 자랑한다는 미국의 야후는 이미 인터넷을 넘어 ‘종합 미디어 기업’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 고위 인사들을 영입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이 이동통신회사로만 보이는가. 이미 ‘종합 미디어 그룹’을 향해 뛰고 있다. KT도 가세했다. 지금은 이들이 영상 콘텐츠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것처럼 보여 신문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신문 콘텐츠는 모든 콘텐츠의 아버지다.
-미디어 공룡으로부터의 보호막
동아ㆍ조선은 신문법을 비판한 지난 번 세계신문협회 총회를 흐뭇하게 바라보았을지 모르지만, 자기 처지를 먼저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서구 유력지들은 방송에서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모든 매체를 섭렵하는 ‘종합 미디어 그룹’에 소속된 일원이다.
반면 동아ㆍ조선은 주력 기업이 신문이며 동시에 주간지ㆍ월간지를 내고 출판사업을 겸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종합 미디어 그룹’의 장단에 놀아나선 안될 처지라는 것이다.
동아ㆍ조선이 청구한 헌법소원의 정신에 충실하자면, 한국도 서구식의 ‘종합 미디어 그룹’을 허용해야 한다. 또 ‘식인 상어’라는 악명을 얻은 루퍼트 머독 같은 세계적인 미디어업계 거물들도 국내에서 마음대로 활개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동아ㆍ조선은 정녕 이런 사태를 원하는가? 자기들보다 덩치가 수십 배에서 수백 배가 큰 공룡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마저 언론 자유의 이름으로 옹호할 뜻이 있는가?
동아ㆍ조선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욱하다는 것이다. ‘다양성’과 ‘책임성’을 양 축으로 삼는 신문법의 정신은 동아ㆍ조선을 미디어 공룡들로부터 보호해 주는 갑옷과 같다. 신문법에 어설픈 점들이 많다.
그걸 보완해 가면서 일본처럼 아예 활자 매체를 진흥하는 법을 만들자고 리더십을 발휘해도 모자랄 판에 ‘인위적 개입’에만 분노해 다 죽어 가는 신문 산업의 목을 또 한번 조르는 자해극을 벌이다니 이게 될 말인가. 그렇게 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