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것 다 알았다는 생각이 들고, 긴장감이 사라지면 부부는 자연스럽게 권태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아무리 열정적인 사랑 끝에 결혼한 사이일지라도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백년가약을 맺은 게 5년 전인지, 6년 전인지조차 가물가물하고, 서로의 섹스 점수는 빵점이라고 여기는 존(브래드 피트)과 제인(안젤리나 졸리) 스미스 부부.
두 사람은 심리 치료사에게 상담을 받아도 도무지 결혼생활의 무료함을 걷어내지 못한다. 이런 둘에게 감춰온 비밀이 있었다면, 더구나 그 비밀이 밝혀지면서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다면 부부 사이의 긴장감이 되살아날까?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여피족 맞벌이 부부인 존과 제인은 겉으로는 건축업자와 컴퓨터 전문가라는 ‘정상’ 직업을 갖고 있으나 사실은 기업형 청부살인조직의 이름난 킬러들이다.
집을 나서면 일터라는 ‘전쟁터’에서 아연 활기를 띠는 두 사람은 한 표적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게 되고, 각자의 상사로부터 48시간 내에 서로를 제거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할리우드의 두 대형스타가 주연한, 이 ‘말 안 되는’ 스토리의 영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는 결혼생활에 대한 하나의 우화이다.
둘은 온갖 총기 뿐 아니라 프라이팬, 칼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무기 삼아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치열하게 싸우지만, 이는 두 사람이 묵은 권태를 털어내고 새로운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서로 으르렁 거리다가 한번의 ‘운우지정(雲雨之情)’으로 신혼의 달콤함을 되찾는 부부의 모습이 당혹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액션과 코미디, 멜로 등 여러 장르를 가로 지르며 현대 결혼제도를 유쾌하게 풍자한다. 또한 가정 밖에서 닥친 시련에 맞서 더욱 단단해지는 부부관계를 통해 오랫동안 사회를 지탱해온 결혼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감이 제거된 액션과 총격 장면 때문에 이런 영화의 메시지를 붙들고 있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처음 제인 역에 캐스팅 된 니콜 키드먼이 출연을 고사해 캐서린 제타 존스가 거론되기도 했으나 촬영 스케줄이 맞지 않아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남편 존 역에는 윌 스미스와 조니 뎁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앨프레드 히치콕의 유일한 스크루볼 코미디(신분 격차가 큰 두 남녀가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로, 통통 튀는 부부의 사랑과 갈등을 다룬 1941년 작품과 제목이 같아 흥미롭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감각적인 연출 실력으로 눈길을 끈 더그 라이먼 감독은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유머가 가득한 도로 추격 장면 등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 16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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