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규모에 비해서 신문의 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매일 시사 정보를 공급해 주는 신문이 많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점점 뉴스를 읽지 않는, 이른바 뉴스 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신문이 많아져 시민들의 다양한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주도록 장려할 일이다.
통계로만 보면 국내 일간지가 너무 많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지난해말 국내 일간신문은 모두 138개로 집계됐다. 미국의 일간지수는 거의 1,500개에 달한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국내 일간지수는 미국 보다 오히려 적은 셈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나라는 신문수가 너무 많다고 느끼는가. 동일한 지역에서 별로 차별성도 없는 유사한 신문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전국지가 너무 많다. 경제지나 스포츠지 등 특수 신문을 제외한 일반 신문의 경우 전국 독자를 대상으로 한 신문의 숫자는 무려 28개에 달한다. 이들 신문들은 대체로 유사한 지면 서비스를 가지고 경쟁한다.
전체 신문매출액에서 전국지가 차지하는 몫은 거의 90%에 이른다. 때문에 80년대 말 민주화 이후 10년 동안 잇따른 창간으로 일간지수가 3배 가량 늘어나는 과정에서 너도 나도 전국지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발행부수 상위 3개 신문이 신문배급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신문시장의 70% 가량을 차지했다. 나머지 25개 신문이 20%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최근 5년간 신문 구독시장은 열가구 가운데 네 가구만 정기구독을 할 정도로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으니 신문 위기가 화두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한번 전국 일간지로 자리매김한 신문사들이 서비스 대상 지역을 줄인다든지, 특수 전문지로 탈바꿈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신문 조직과 기자들의 자존심과 해오던 신문영업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는 50여개에 달하지만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서울 얘기를 보도하는 신문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미국의 권위지인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지가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지방지라는 사실을 아무리 강조해도 우리 신문사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중앙 일간지의 범람은 신문 시장뿐만 아니라 민주적인 의사소통에 참여해야 할 시민들을 소외시킨다. 지방선거를 마치 전국 선거처럼 보도하는 중앙 일간지의 보도 관행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 4.30 지방선거에서도 중앙 일간지들은 지방선거를 자사 독자의 구미에 맞춰서 보도하는 바람에 지역선거를 사실상 유린했다.
지역선거에서 지역 유권자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 지역 현안이나 이슈는 전국 일간지의 시각으로 보면 잘 팔리지 않는 기사에 해당한다. 전국 신문으로서는 지방선거가 지방선거로 남아 있으면 그만큼 기사의 가치도 떨어진다. 전국지 입장에서는 지방선거가 중앙당이 챙겨야 하는 전국선거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불과 몇 군데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 결과를 중앙 정부나 정당에 대한 중간 평가로 규정하는 보도를 아무런 반성 없이 반복적으로 행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도 중앙 언론이 지방선거를 상품화하는 과정에 동참해서 일정한 과실을 따 먹는다.
지방선거의 경우 지역 유권자들은 중앙 일간지의 전국 독자를 겨냥한 보도에 일정한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느새 우리 지역 선거에 관한 보도는 남의 얘기가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우리 지역이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음에 의아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선거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고, 나아가 뉴스에 대한 관심도 멀어져 간다.
오늘날 지역 유권자들의 언론에 대한 소외 의식은 일반 독자나 뉴스 시청자에게도 만연돼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신문들이 숫자는 많아 졌지만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뉴스는 신문이든 방송이든 남의 얘기는 많지만 정작 우리의 얘기를 찾기가 힘들다. 신문이 독자가 실재하는 지역을, 그리고 독자의 관심을 구하지 않으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지어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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