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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피의사실 보도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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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피의사실 보도의 문제점

입력
2005.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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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6년 가까운 해외 도피 끝에 귀국했다. 앞으로 수사 진행 상항도 매일 생중계되다시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무차별 보도가 어떤 문제를 불러 일으키는지를 언론사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를 알면서도 이런 식의 보도를 계속한다면 더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많은 이들, 심지어는 법률가들조차도 피의사실 공표를 처벌하는 조항을 두는 이유는 피의자의 명예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피의자 개인의 인권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가 소중한 경우가 많으므로 수사 진행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피의사실이 공표되더라도 이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잘못된 논리이다.

피의사실 보도를 금지하는 이유는 피의자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재판이 열리기 전에 소추자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면 사람들은 사건의 결말에 대하여 미리 견해를 형성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재판에 임해야 하는 법관은 부당한 심리적 압박 하에서 사건을 심리할 수밖에 없다.

법관 자신의 결론이 이미 보도된 내용과 같다면 그 판결은 기정 사실을 그저 추인하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만일 그의 결론이 사전에 보도된 내용과 다르다면, 그 법관은 강고하게 형성된 국민의 견해를 뒤집는 특단의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

-공정한 재판에 악영향

우리나라와 같이 피의사실 보도가 광범하게 이루어지는 경우, 법관은 사실상 전 국민과의 힘겨루기를 하여야 하는 불쌍한 처지에 놓인다. 소추자 측은 이러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그저 느긋하게 관전하면 된다.

상황을 뒤집어 피의자가 재판 전에 온갖 언론매체를 동원하여 자신의 결백을 아침 저녁으로 보도하였다고 생각해 보라. 그 기간에 소추인 측의 주장은 한번도 보도된 바 없어 온 국민이 그 자의 결백을 확신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피의사실 보도를 금지하는 이유는 재판 절차의 정상적 작동을 확보하고, 법관이 여론의 압박에서 자유로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피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사법제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알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과, 수사에서 공판 개시 시점 까지 ‘한시적’으로 보도를 중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요구가 아니다. 재판이 예정된 사안의 내용을 법관보다 ‘한발 앞서 알아야 할’ 권리는 적어도 문명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아니한다.

사건의 전모랍시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재판 전에 축구 중계하듯 보도하는 작태는 그저 무식의 소치라고 좋게 봐 주기 힘든 면이 있다.

재판이야 엉망진창이 되건, 법관이 심각한 여론의 압박에 시달리건, 그리고 때로는 재판의 결과가 미리 보도된 내용과 다르게 나와 당사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오든 상관할 바 없이 우선 시의성 있는 뉴스거리를 팔아먹음으로써 내 잇속이나 채우고 보자는 적나라하고 파렴치한 상업주의를 의심하게 한다.

이것을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언론사의 후안무치야말로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김우중씨 수사 보도 주목

진정으로 알 권리를 중히 여긴다면 김우중씨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어 공판이 열릴 때까지 언론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전까지 우리 기업 경영이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점은 무엇이었고, 기업 회계의 투명성을 관철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그에 따르는 현실적 어려움은 어떤 것이고, 재벌의 공과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 심층적 보도를 함으로써 공적 토론의 장을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김우중씨의 혐의가 드러났는지에 대하여는 판사가 판단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언론의 정도이다.

김기창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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