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분석이다. 여성이고 40대다. 육아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두말 없이 양육의 책임을 떠맡아야 할 부모 세대가 모조리 제 삶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하는 엄마는 옛날에도 있었는데 갑자기 가족, 즉 집안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맡아오던 양육 기능이 주인을 찾지 못하면서 일이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맞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은 못된 가족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정재은 감독의 성장영화 ‘태풍 태양’에서의 아버지는 보통의 아버지와는 무척 다르다. 빚쟁이에 쫓기다 어머니만 데리고 해외 도피길에 오르는 매정하고 못된 아버지다. 공항에서 어머니는 아주 잠시 ‘그래도 어떻게 애만 떼어 놓고 가느냐’며 눈물을 훌쩍이지만 아버지는 냉정하게 어머니의 팔을 잡아 끈다.
아들(천정명)은 혼자 남는다. 그런데 아들은 혼자서도 쑥쑥 큰다. “내가 없으면 우리 아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아들은 크지 못했을 것이다. 크면 딱 그 아버지처럼 될 것 같은 영화 속 모기(김강우)도 첫인상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이해가 간다. 나이가 들면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 당연히 ‘부모다워져야’ 한다는 건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슬픈 일일 수도 있다.
24일 개봉 예정인 영국영화 ‘마더’를 시사회에서 보고는 매우 오래 심란했다. 아니 무슨 엄마가 저래. 희생만 하는 엄마. 여성성은 찾아 볼 수 없고 모성만이 남은 우리의 보통 엄마와 완전히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딸의 남자를 사랑했다’는 카피는 매우 로맨틱한 버전이고 엄마는 “장의사 빼고는 이제 아무도 만져 주지 않을 것 같았던” 자신을 침대 위에서 사랑해주는 딸의 애인 몸에 흠뻑 빠졌다. 그래서 딸과 그의 사이를 이간질 한다.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좀 슬펐다. 그런데 좀 지나니 이 못된 엄마가 조금 이해될 것도 같다. 최근 방송 모니터 단체인 ‘미디어세상 열린사람들’의 보고서에서처럼 “엄마는 찬밥에 물 말아서 먹고 있어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영화 ‘엄마’ 중)라는 식으로 노동, 자녀양육, 내조의 기능을 모두 해내야 하는 ‘종합 코디네이터’ 엄마보다는 행복할 것도 같았다. 어른들도 가끔은 희생을 거부하고 매몰차질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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