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비주류와 소장개혁파의 도전에 시달리다가 4ㆍ30 재보궐선거 압승과 노무현정부의 잇따른 실정으로 요즈음 잘 나가고 있는 사람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이다.
이같은 박대표가 10일 한 강연에서 “현 정부는 미래에 대한 도전보다 국가보안법 폐지나, 과거사법, 신문법 추진 등 과거와 싸우려 하면서 통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고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개혁이라고 한다”며 “참여정부의 개혁은 실패한 개혁”이라고 비판한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개혁이 실패한 개혁이라느니, 통합보다 분열을 조장하느니 하는 박대표의 분석에는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문제는 국가보안법 폐지, 신문법과 과거사법 추진 등이 미래에 대한 도전을 젖혀두고 과거와 싸우려 하는 것이라는 박대표의 분석이다. 이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주장으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국보법 등 인식에 실망
우리도 이제 낡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선진국처럼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미래에 대한 도전이지 어떻게 해서 과거와 싸우는 것인가? 오히려 아직도 낡은 국가보안법을 고수하려는 박대표야말로 냉전이라는 과거의 유령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문법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라 박대표가 이 법을 엉뚱하게 과거와의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신문법은 몇몇 신문이 신문시장을 독점해 다양한 정보의 흐름을 막는 것을 바로잡겠다는 것으로 여론시장의 미래에 대한 것이지 과거와 싸우는 것이 결코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과거사법이다.
물론 과거사법도 단순히 과거에 매달리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정리를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해 나가자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백배 양보해 과거사법의 경우 과거와 싸우는 것이라고 해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다면 박대표가 끝까지 과거사법의 국회통과를 막았어야지 그것이 아니라 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는 여당안의 조사대상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적인 세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추가시켜 통과시켰느냐는 것이다.
군사독재에 의한 인권침해를 규명하는 작업은 과거와 싸워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고 소위 좌파와 민주화운동에 의한 인권침해를 규명하는 작업은 미래에 대한 도전이란 말인가?
이처럼 박대표는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무엇이 미래이고 무엇이 과거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박대표가 홈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써놓은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선진국을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말로는 일리 있는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이 선진국이 되는 것이냐는 의문이다.
박대표는 선진국을 1인당 국민총생산(GNP) 2만 달러 이상인 나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경제수준은 선진국의 중요한 지표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사상, 결사,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과 인권이다.
공동체 반공주의가 목표?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으로 사상의 자유를 가로 막으면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박대표의 사고의 천박함에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박대표식 선진국에서 별로 살고 싶지 않다. 박대표는 며칠 전 ‘한국일보 창간 51주년’ 기념인터뷰에서 자신과 한나라당의 정치노선을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유식하고 어려운 개념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박대표와 한나라당의 그간의 행보를 볼 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공동체주의와 거리가 한참 멀다. 게다가 설사 잘해서 공동체적으로 나가더라도 사상의 자유에 대한 시대착오적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박대표의 노선은 ‘공동체 자유주의’가 아니라 기껏해야 ‘공동체 반공주의’에 머물고 말 것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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