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절감을 위해 KBS는 8월 100회를 끝으로 종영하는 1TV ‘불멸의 이순신’에 이어 같은 시간대에 2001년 방송했던 대하사극 ‘명성황후’의 편성을 계획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시청자들은 주말 황금시간대에 지상파에서 ‘재방송’을 보게 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명절의 의미를 더욱 뜻 깊게 해주던 천하장사 대회 등의 씨름 중계도 자칫하면 볼 수 없을지 모른다.
KBS가 ‘민속씨름 사업’에 할당된 17억원의 예산 전액을 삭감하는, 사실상의 사업 폐지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지난 해 638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도 800억 가량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는 공영방송 KBS의 현주소다. KBS의 총체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1일 정연주 사장은 임금삭감과 수신료 인상 등을 골자로 한 경영 및 재원구조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역풍이 거세다. 내부적으로는 팀제 개편과 지역국 통합 등 조직개편을 추진해온 현 경영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지닌 노조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물가와 연동한 수신료 인상과 중간광고 도입 등은 상세히 거론하고 있는 반면,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구체안이 마련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공영성과 방송 콘텐츠의 질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사측의 혁신 방안에 대해 노조 측은 “정 사장이 팀제와 지역국 구조조정 등 신자유주의식 개혁과 성과 만에 몰입 해 공영방송의 방향타를 잃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8일부터 이틀간 전체 조합원 4,400명 가운데 416명을 대상으로 벌인 전화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혁신안에 대한 반대가 68.1%(적극반대 35.6%, 다소 반대 32.5%)에 달했다.
KBS 위기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 수준을 묻는 질문에도 45.4%가 정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경영진 임금삭감 33.7%, 사장 제외한 임원퇴진 13.9%) 임금삭감에 관해서는 41.6%가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5%내외 삭감 36.8%, 인상 11.8% 10%이상 삭감 7.5%)
노조회의 녹음사건을 두고 극한 대립을 벌였던 KBS노사가 위기의 해법에 있어서도 전혀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KBS 내부에서는 “경영진의 책임 있는 자세가 부족하다” “KBS가 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대처 방법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에 KBS 경영진은 14일 ‘사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임원진 임금 20% 삭감과 사원 대토론회를 제안했지만 같은 날 열린 노조 임시대의원 회의 결과는 무능한 경영진 퇴진 없이는 고통분담도 없다는 원칙만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이렇듯 혁신안을 놓고 또 다시 노사간 진통을 겪고 있는 KBS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곱지 만은 않다. 수신료 인상을 포함해 간접광고(PPL) 허용 및 중간광고, 광고총량제 도입, 2010년까지 방송발전기금 납부 유예 등의 경영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거론하기 앞서 내부의 구조조정과 사업정리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숙명여대 강형철(언론정보학) 교수는 “팀제 실시를 통한 인력활용만으로는 경영 합리화가 힘들다”며 “영국의 BBC처럼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혁신안에 대해서도 “재정 문제로 제작비를 줄인다는 것은 시청자에 대한 일종의 협박이고, 중간광고 요구는 공영방송의 위상을 망각한 자사 이기주의적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2003년과 04년 KBS 경영평가서 작성에 참여한 고려대 이필상(경영학) 교수는 “KBS 재정에서 수신료가 차지하지 않는 부분은 40%밖에 되지 않는다”며 “신뢰 회복을 바탕으로 수신료 인상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KBS의 경우 떠맡은 국책사업과 기타 사업 구조가 방만한 상태”라며 “공영성을 지키는 한에서 사업구조를 개편ㆍ정리 하고 이에 걸맞게 인력 구조를 재배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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