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병을 앓고 있는 노인 환자에게는 통합치료가 필요하다.”채드 볼트(Chad Boult) 존스 홉킨스 블룸버그 보건대학원 통합의료연구소 소장 겸 보건정책학과 교수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지역 개원의사와 간호사, 중증 노인환자를 유기적으로 맺어주는 통합 의료서비스 프로그램 ‘Guided Care’를 주관하고 있다.
미국은 일원화한 공적 장기요양보험은 없고, 주 정부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비용이 올라가고 있는 미국 장기요양보장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주장하는 통합 치료란 4~5개의 만성병을 동시에 앓고 있는 노인에게 개원의 병원 재활센터 응급실 등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 기관들이 협력해 통합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통합(integration)’은 최근 장기요양보장에서 최고의 화두이다.
“노인은 크게 건강한 노인과 만성질환을 가진 허약한 노인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현재 미국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은 의료서비스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비교적 건강한 노인집단에 맞추어 조직,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급성의료 위주로, 노인이 암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든지 하는 사건을 당했을 때는 즉시 대처할 수 있지만 만성질환을 여러 개 앓고 있는 노인에게는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볼트 교수는 “현재의 미국 의료시스템은 이런 환자의 복잡한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개원의, 병원, 재활, 응급실 등은 사료 저장고(silo)처럼 독립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지만, 서로간의 조정이나 협력 시스템은 잘 갖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만성병을 갖고 있는 80세 이상 할머니가 있다고 하자. 보통 이 정도 나이가 되면 고혈압, 심장병, 당뇨, 우울증, 치매 등을 앓고 있어 3명 이상의 주치의가 있지만, 주치의들은 서로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아왔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가족들 역시 어떤 서비스가 이뤄졌는지 알 길이 없다.
복합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에게 단편적이고 분절된 서비스가 제공되고, 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의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조기에 예방적인 모니터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볼트 교수는 “예를 들면 수시로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는 만성심부전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대책은 매일 환자의 체중을 측정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환자에게 체중 2㎏ 증가는 몸에 수분이 축적됐다는 적신호로 곧 폐에 물이 차게 되는 응급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들을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어 조기에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면 고비용의 입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Guided Care’대상으로 삼는 중증노인은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보건대학원 조나단 와이너(Jonathan Weiner) 교수가 의료보험 청구자료를 근거로 개발한 의료이용에 대한 예측모형(Ambulatory Care Groups)을 통해 차기년도에 고비용 의료비(상위 15%)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65세 이상 노인이다. 대부분 다수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중증장애를 지니고 있어 정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치매나 우울병을 가진 정신질환자도 포함된다.
의료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노인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해 케어의 가치도 높이고, 이들의 입원에 따른 의료비도 절감해보자는 것이다. 볼트 교수는“현재 미국의 노인 의료시스템은 보통 정도의 질과 매우 높은 비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치가 낮은 편”이라며“이미 시범실시를 통해 실험군이 대조군에 비해 10~15%의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볼트 교수는 하트포트 재단(Hartford foundation), 의료관리연구청(AHRQ: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 Quality),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ging), 랭글로스 재단(Langeloth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5년 동안 시범사업을 더욱 확대할 생각이다.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올 경우 미국 전역으로 확대해 향후 10년 안에 전국에 정착시킬 계획이다. 또 15개 간호대학에 노인전문간호사(GCN) 양성과정을 두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부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메디케어 급여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볼트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온락’(On Lok: 5월 18일자 참조)과 ‘PACE’의 모델을 많이 참고로 했으나 이들 모델은 비싸고 확산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Guided Care는 더 많은 대상자에게 훨씬 덜 비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티모어= 이윤환 교수(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과ㆍ한국일보 특별취재팀) yhlee@ajou.ac.kr
■ GC프로그램 중심축 '노인전?
‘Guided Care’ 의 핵심은 노인전문간호사(Guided Care Nurse: GCN)의 역할이다. GCN은 노인 케어 제공자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정, 정보교환, 교육 등을 통해 기존 의료시스템이 더 잘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다. 만성질환 노인에 대한 전문간호교육을 받은 간호사(Registered Nurse)가 주축이 되는데, 총 9주간(360시간)의 전문교육과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부에선 미국의 간호사 인력부족이 심해 GCN 확보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간호인력 부족현상은 격무에 시달리는 병원에만 해당될 뿐 GCN 충원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채드 볼트 교수는 “GCN들이 노인을 돌보는 일에 개인적인 보람을 느끼고 있다”면서 “정해진 시간(오전 7시~오후 3시)이 아니라 유연하게 스스로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고 말했다.
GCN은 세가지 자격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지역사회 간호 경력이다. 가정간호사나 공중보건간호사의 경험과 의료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노인환자 간호 경력이다. 셋째, 지도력이다. “금연하세요, 다이어트하세요, 약 드세요, 병원가세요” 등의 단순 지시는 환자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는 “우리가 찾는 간호사는 자신을 코치로 여기는 사람들”이라면서 “환자를 도와주는 자(helper)를 원한다”고 말했다.
가정방문시 GCN은 먼저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노인 상태를 파악한다. 환자정보를 입력하면 컴퓨터를 통해 케어 가이드라인을 얻을 수 있다. GCN은 이를 바탕으로 케어계획을 세운 후 담당 의사와 상의, 최종계획을 완성한다.
환자가 호흡곤란 등 문제가 생기면 GCN은 전화로 약복용이나 ‘바로 앉아있기’ 같은 몇 가지 지시를 할 수 있으며, 호전되지 않으면 응급실로 가도록 주선한다. GCN은 응급실로 찾아가 의료진에게 그 동안의 환자 경과를 설명해 주게 된다.
환자가 입원하게 되면 GCN은 매일 병실을 방문하게 되며, 퇴원일이 가까워지면 집안에서의 케어를 위해 약, 산소호흡기, 보조용구(특수침대, 화장실 보조기) 등을 준비하게 된다. 병원에서 따로 지정한 가정간호사가 방문하게 될 경우 GCN은 환자에 대한 케어계획을 설명해준다.
지속적인 케어(proactive follow-up)도 가능하다. GCN은 환자나 가족과 수시로 전화하면서 환자상태를 체크하게 된다. 당뇨병환자에게는 매월 전화를 걸어 혈당치를 물어보고, 만성심부전 환자에겐 매일 체중을 기록하게 한다. 이렇게 수시로 모니터링함으로써 환자의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보통 GCN 한 명당 40~50명의 중증 노인 환자를 돌본다. GCN은 환자 일인당 월 150달러를 받고 있다.
GCN의 역할은 전체 의료비도 감소시킨다. 질환의 조기발견, 조기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어 불필요한 입원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병원 입원은 1일에 평균 2,000달러로, 평균 4~ 5일 입원하기 때문에 무려 1만 달러에 가까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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